[다산칼럼] 저성장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푸른색 갈기를 가진 건장한 갈색말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드넓은 광야를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2014년 올해는 ‘청마의 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젠 지쳐서 더 달릴 힘조차 없다고 자조하는 세상이 됐지만, 그래도 청마처럼 다시 한번 달리고 싶은 욕망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며 살아간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후진국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길을 달려왔고, 정치민주화를 통해 후진의 굴레는 벗게 됐다. 그런데 지금은 저성장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지 않느냐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청마의 주인공이 돼야 할 청년층과 중산층은 나날이 생기를 잃고 지쳐가는 모습이다. 일찍이 경제 기적을 일궜던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탄식하며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우리는 잠시 힘들어하고 있을 뿐 곧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서서 광야의 청마처럼 힘차게 달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청마는 스스로 신이 나야 달리는 말이지, 무작정 채찍을 가한다고 달리는 말이 아니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느릿느릿 걸으면서 힘들어하는 말에게 좋은 먹이를 줘 에너지를 재충전하게 해주고, 어디 다친 데나 병든 데가 없는지 세심하게 보살펴줘야 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개방적 시장경제체제를 확장하면서 이만큼 성장 발전해온 것이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고 공권력을 동원해서 발전시켜온 경제가 아니다. 경쟁원리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지 않았다면 스마트폰, 자동차, 조선, 전자, 철강 같은 세계 일류산업이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글로벌 시장경제체제가 재벌만 키우고, 경제양극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치권에선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갈라놓고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경향까지 나타나게 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동원하며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재벌, 대기업들에 규제의 채찍을 가한다고 비좁은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규제가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하는 인력난, 자금난, 기술 부족을 해소하는 데 정부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까닭이다.

중소기업 인력난만 하더라도 그렇다. 대졸 청년들의 취업 기피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면서 외국인 노동력을 보다 과감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에서 기술을 익힌 외국인 근로자들을 취업기간 3년이 됐다고 내쫓을 일이 아니라 영주권을 줘 국내에서 결혼해 살도록 해야 한다. 50대 초반에 퇴직하는 대기업 출신 인력을 중소기업에 재취업하도록 적응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임금체제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청마가 다시 달리려면 그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은 금융부문이 담당해야 한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고, 중소기업의 만성적 자금난과 벤처기업 자금애로를 금융부문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는 재도약이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치유해야만 청마가 달려갈 길이 순탄해진다. 지난 반세기와 달리 앞으로 세계 자본주의가 걸어가야 할 길은 장애물이 많은 험로가 됐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재정건전성이 파괴됐고, 중국도 부패와 비효율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내적으로는 세대 간, 지역 간, 노사 간 갈등을 풀어나갈 사회적 통합 능력이 약화됐다. 정치권은 되레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국민 통합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새해부터 청마를 다시 달리게 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탈출할 때, 우리는 당면한 청년실업, 자영업의 몰락, 노후불안 문제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경제강국으로 도약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힘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강봉균 < 건전재정포럼대표·前 재경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