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관가] "내각 손발 묶어놓고 무능하다니… 절반은 청와대 책임"
“내각이 무능하다고 비판하지만 절반의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누가 ‘받아쓰기 내각’을 만들었나.”(모 부처 A국장)

연초 불거진 고위직 물갈이 인사설 파문으로 관가가 들끓고 있다. 일부에서는 총리실의 1급 일괄 사표 제출이 국정 운영 실패를 공무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관가

“지난해 말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 초기에 정부 개입 최소화를 지시한 게 청와대다. 정부와 노조가 직접 대치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관련 부처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질책이 떨어졌다.”

“청와대가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에 일일이 간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책임장관제냐.”

3일 한국경제신문이 익명을 전제로 각 부처의 1급과 국장급 간부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청와대와 총리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1년 동안 죽어라고 일했더니 ‘총알받이’로 부려먹는다는 감정 섞인 반응까지 나오는 등 공직 사회 전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사회 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는 “대통령 주재 회의를 보면 장관이나 수석이나 모두 고개 숙이고 ‘말씀’을 받아적기 바쁘다. 밖에서 ‘받아쓰기 내각’이라고 비아냥대는데 솔직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처의 실장급 간부는 “청와대에서 140개 국정과제를 딱 정해놓고 다른 아젠다(의제)는 아예 만들지도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산하기관장에 대한 인사는커녕 일을 시킬 국장에 대한 인사권도 없다. 이게 무슨 책임장관제냐”고 말했다.

모 부처의 한 1급 간부는 “우스갯소리로 우리끼리는 ‘가방모찌’(가방을 대신 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일본어, 권한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의미)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오고 있다. 권한은 없는데, 각종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묻겠다는데 솔직히 불만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2일 “개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 꼴이 됐다. 정홍원 총리가 3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도, 공직자도 변해야 한다. 구태의연한 자세로는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다”며 중앙부처 공무원에 대한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예고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개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으니 부처별로 장관들이 고위직 인사에 들어갈 것”이라며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1급 교체 우선 대상으로 지목된 부처들은 “계획이 없다”는 말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있다. 심지어 장관이 나서 “공직이기주의를 버리고 철밥통을 깨야 한다”고 말한 안전행정부조차 1급 인사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모 부처 과장은 이 같은 혼란에 대해 “실적 부진의 책임을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부서장에게 묻겠다는 건데 말이 되느냐”고 했다.

○전문가 “공공개혁에 공직도 포함”

하지만 공무원들의 이 같은 기류가 국민에게 과연 설득력이 있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국민을 쳐다보고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자리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으로 비쳐진 게 사실 아니냐는 지적이다.

임기 2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고위 공직자들의 면모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 부문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정부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다만 인물이 아닌 시스템 위주로 국정이 운영되도록 내각과 청와대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청와대와 정책을 구체화하는 부처 간의 반목이 지금처럼 노골화될 경우 앞으로 국정 운영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1급을 다 자른다고 인적 쇄신이 되겠느냐”며 “국가의 인재풀로 활용하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