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와 은행이 도산할 경우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사전 정리계획을 세워 놓는 제도가 도입된다. 경영상 위기를 맞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추락할 경우 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되는 ‘강제손실부담(mandatory bail-in)’ 제도 등이 의무화될 전망이다.

5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산업 기업 등 6개 은행은 최근 ‘금융기관 회생·정리 계획안(RRP·Recovery and Resolution Plan)’ 제도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이 도입을 검토 중인 RRP는 향후 금융회사가 도산할 때를 가정해 세운 자체 정상화 및 청산 계획이다. ‘사전유언장’으로도 불린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금융지주사나 은행들은 경영위기가 닥쳤을 때 회생하기 위한 △자본확충 △자금조달 △시장 신뢰 회복 방안 등을 미리 마련해놔야 한다. BIS비율을 세분화해 단계별로 필요한 자본 확충 규모를 구체적으로 정해두고 강제화하는 식이다.

또 금융지주사나 은행들은 파산에 대비한 정리계획도 의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자산·부채 이전(P&A) 계획이나 강제손실부담 의무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강제손실부담은 금융회사의 자본건전성이 크게 악화되거나 금융당국의 시정조치를 받게 될 때 채권자의 채권을 주식 등으로 강제 전환하는 제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권자의 재산권 침해 우려에 대해서는 사전협의나 계약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 등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TF가 내년에 최종안을 만들고, 금융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법제화 여부를검토할 방침이다.

사전 유언장 제도 도입은 금융회사 파산이나 부실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최악의 경우 금융회사가 부채를 자기자본으로 스스로 갚을 수 있게 하고,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 예금보험공사 금융학회 금융연구원 등은 오는 13일 ‘금융회사의 정리체계 관련 국제적 논의와 대응’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선 금융기관들이 이미 자구안을 마련해 유사시에도 공적자금 투입 없이 회생하거나 도산하는 절차를 마련해놨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사 규제 강화를 위해 제정한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사들은 연말까지 회생·정리계획안을 만들어 미국 중앙은행(Fed)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에 제출해야 한다.

장창민/박신영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