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늘그막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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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중요한 건 정신적 건강
마음 비우고 주름살 인정해야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 >
마음 비우고 주름살 인정해야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 >
![[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늘그막의 삶](https://img.hankyung.com/photo/201311/AA.8088442.1.jpg)
늘그막의 삶을 윤택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래야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늘그막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과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경제력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정신적인 건강도 중요하다. 늘그막에는 늘그막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수양이 뒷받침되지 않아 세속적인 욕망에 찌든 삶을 산다면 남들로부터 존경은커녕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조선 중기 평생 학문연구에 몰두했던 학자 여헌 장현광(1554~1637)은 ‘늘그막에 해야 할 일’이란 글에서 ‘언어를 그치고, 경영을 끊고, 마음을 크게 비우고, 사시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늘그막에는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고, 잡스러운 일을 줄여 심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잡념을 끊고, 자신의 삶을 천지자연의 이치에 맡기라는 것이다.
또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친이 이뤄지자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며 자결을 시도했던 동계 정온(1569~1641)은 ‘백발’이란 시에서 ‘늘그막은 의당 오게 마련인 거로, 젊은 시절 호시절이 얼마나 되랴. 백발 본디 날 따르는 물건이거늘, 굳이 뽑아버릴 필요 뭐가 있으랴’라고 했다.
봄이면 돋아나고, 여름이면 생장하고, 가을이면 결실을 맺고, 겨울이면 사라져 가는 것이 천지자연의 이치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쇠하고, 사라져 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삶의 과정에서 벗어나려고 지나치게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과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의 늘그막이라고 아름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뜨는 태양에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듯이, 저녁에 지는 해에도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누릴 수 있지만, 늘그막의 아름다움은 차근차근 준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늘그막을 위해 신체적 건강과 경제적 여유로움뿐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로움도 준비해야 한다.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