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민은행 경영진의 변명
“직원들의 도덕의식이 이렇게까지 무너진 줄 몰랐습니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25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1700여억원 부당대출 사건, 예·적금 담보대출 이자 과다수취 등에 이어 본점 직원이 90억원의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현금으로 바꿔간 사건까지 터진 상황을 한탄하는 얘기였다.

국민은행의 다른 임원은 ‘주인 없는 조직의 설움’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3년 단위로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는 과정에서 정치권과 금융당국 등이 자기 사람을 보내기 위해 조직을 들쑤시다 보니 본연의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에 둔감해졌다는 설명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얘기도 있었다. 지난 7월 취임한 임영록 KB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단기 성과’에 목을 매는 스타일이 아닌 만큼 은행을 전면 쇄신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희한하게도 이 같은 주장 속에서도 통렬한 자기반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임 경영진의 잘못이 이제 터져 나왔으니 ‘빅배스(big bath·대청소)’를 하고 가야 한다는 주장만 난무할 뿐이었다. 하지만 현직 국민은행 임원 대부분이 어윤대 전 KB지주 회장과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시절 최소 본부장급 이상의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다. 이에 대해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영진이 잘못하고 있을 당시엔 문제점을 지적하지도, 개선책을 제안하지도 못했으면서 이제 와서 전직 경영진을 탓하는 걸 보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의 대상에서 임 회장과 이 행장도 벗어나긴 어려울 듯하다. 임 회장은 지난 7월까지 KB지주 사장을 3년간 지냈다. 이 행장은 같은 기간 국민은행 리스크관리 담당 부행장을 맡았다. 이에 대해서도 KB지주 관계자는 “당시 지주사 사장은 회장의 그늘에 가려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리스크 담당 부행장은 도쿄지점 부실대출 등과 업무 연관성이 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 말이 맞다면 국민은행과 KB지주의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은 험난해 보인다. ‘권한이 부족해서’ ‘담당이 아니어서’라는 핑계가 쌓여 국민은행을 이 지경까지 만든 것 같기 때문이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