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구 공간정밀 사장(오른쪽)이 신도림동 공장에서 직원과 머시닝센터를 통한 금속 가공기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김대구 공간정밀 사장(오른쪽)이 신도림동 공장에서 직원과 머시닝센터를 통한 금속 가공기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서울 신도림동에 있는 공간정밀은 직원 11명의 작은 기업이다. 하지만 특수금속 가공 실력은 동종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까다로운 반도체검사장비 부품을 만들 뿐 아니라 일본의 미쓰비시가 납품하던 발전소 부품도 국산화했다. 이 회사의 기술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신도림동만큼 최근 10년 새 도시 모습이 천지개벽한 곳도 찾기가 쉽지 않다. 연탄·타이어·화학·기계부품 공장이 즐비했던 이곳에는 최고급 호텔과 현대식 주상복합빌딩·아파트 등이 줄지어 들어섰다. 대형 쇼핑센터와 뮤지컬 공연장도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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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인국도에서 한걸음 벗어나 도림천을 따라 서부간선도로 쪽으로 가면 여전히 수십년 된 공장 500여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 공간정밀(사장 김대구)이 있다. 공장 안에 들어서면 ‘윙’하는 소리와 함께 머시닝센터와 밀링 선반 등으로 쇠를 깎는 소리가 들린다. 표면연마기에선 오렌지색 불꽃이 튄다.

“저 온도는 700도쯤 될 겁니다. 불꽃 꼬리가 긴 것을 보니 탄소 성분이 적은 금속이고요.”

공간정밀 김대구 사장, 30년 금속가공 외길…"특수강 평면 가공에서 최고 기술 갖출 것"
김대구 사장(50)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 가공상태가 아주 좋다”고 덧붙였다. 소리만 들어도 금속이 제대로 깎이는지 알기 때문이다. 불꽃 색깔과 길이로 가공 온도와 소재의 종류를 짚어낸다. 30년 동안 금속 가공 외길을 걸으면서 쌓은 노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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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곳에서 공장 3개를 운영하고 있다. 총 면적은 약 500㎡(약 150평)에 이른다. 이 지역에선 제법 큰 규모다. 다른 공장은 대부분 100~165㎡(30~50평) 규모이기 때문이다. 직원은 아내를 포함해 모두 11명.

그가 가공하는 것은 반도체 검사장비 부품과 발전소용 기계 부품 등 정밀가공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품이다. 이 중 반도체 검사장비 부품은 특히 정교하게 깎아야 한다. 가공 대상 금속은 니켈·코발트 합금 등 특수 소재다. 일본에서 수입한다. 일본 기업만이 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특수강을 직경 320㎜, 두께 6㎜의 원판으로 가공한 뒤 전체 평면의 오차를 20마이크로미터(㎛) 이내로 가공하는 게 주된 작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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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형 환봉을 들여다 얇고 균일하게 원판 형태로 자르고 외부에서 도금해온 뒤 다시 표면을 가공한다. 이 부품은 멤스(MEMS)기술을 활용한 반도체검사장비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미세전자기계시스템, 미세전자제어기술 등으로 불리는 멤스는 반도체 공정기술을 기반으로 성립되는 초소형 정밀기계 제작기술을 의미한다.

이 회사가 원판형 특수판을 만들어 납품하면 발주 기업은 그 중심부의 손바닥만한 작은 공간에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금속선 2만 가닥을 심은 뒤 반도체테스트 장비로 완성한다. 완벽한 반도체 검사를 위해선 먼저 금속판이 평평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하는 게 공간정밀이다. 불황에도 이 회사로 일감이 꾸준히 몰리는 것은 이 분야의 기술을 인정받은 데 따른 것이다.

공간정밀 김대구 사장, 30년 금속가공 외길…"특수강 평면 가공에서 최고 기술 갖출 것"
그가 이런 기술을 축적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30년 동안 금속가공의 외길을 걸으며 쌓은 노하우다. 강원 평창 출신인 김 사장은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서울공고를 졸업했다. 그뒤 종업원 2명의 중소기업에 들어가 밀링으로 쇠를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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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공장일이 끝나면 남영동 미술학원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학원 청소를 하는 등 잡다한 일을 하면서 미술을 공짜로 배웠다. 석고조형물을 보고 명암과 원근기법을 활용해 도화지에 옮기는 기량을 닦았다. 3차원 조각작품을 연필만으로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비교적 금방 이를 해낼 수 있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학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쇠를 한번이라도 더 깎고 다듬는 능력을 기르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인생 선배들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사람들과 끈끈한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게 사회생활에서 더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빨리 기술을 습득해서 독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술학원에서 배운 스케치 능력은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김 사장은 “바이어가 어떤 기계부품을 깎아줄 수 있느냐고 전화로 문의한 뒤 이튿날 세부적인 상담을 위해 찾아오면 바이어가 요구하는 부품을 모눈종이에 그려서 보여줬다”고 말했다. 바이어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부품이 투시도로 멋지게 그려진 것을 보면 깜짝 놀라곤 했다.

그는 모눈종이에 그려진 각종 투시도를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때로는 바이어가 생각하는 개념 이상의 뛰어난 구조를 지닌 부품을 설계해 바이어에게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종종 수주로 연결됐다. 부품은 투시도를 거쳐 컴퓨터지원설계(CAD)로 정밀하게 디자인한 뒤 머시닝센터로 가공해 납품됐다. 이런 식으로 산업기계부품, 기어, 휴대폰케이스용 금형, 지그(jig)류 등 각종 금속부품을 만들었다. 창업 초기에는 부품을 가공해도 받아주는 데를 찾기 힘들어 무척 고생했다. 신용불량 직전 단계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자 주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인들이 공간정밀을 추천해준 데 따른 것이다.

둘째, 기술자 양성이다. 그는 “아무리 첨단 장비를 들여놔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는 점을 시간이 흐를수록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컴퓨터가 달려 있는 머시닝센터는 프로그램대로 정확하게 쇠를 자르고 깎지만 이를 컨트롤하는 것은 사람이고 마무리 가공 역시 사람의 감각에 의해 이뤄진다.

김 사장은 “기계나 측정장비로는 분간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를 사람의 손은 알아차린다”며 “이게 바로 인간의 뛰어난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숙련된 기술자를 키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원 중 절반 이상이 7년 이상 경력자다. 젊은이들이 잘 배우려 하지 않고 더구나 소기업에 오기를 꺼리는 현실에서 이들을 숙련기술자로 키워내는 것이다.

그는 후배인 서울공고생들을 인턴사원으로 받아들여 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습능력을 기르는 것을 돕고 있다. 종종 모교에 가서 특강도 한다.

김 사장은 요즘 두 가지를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다문화가정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구로구에는 다양한 이주여성이 사는데 이들 중에는 지적 능력과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많다. 김 사장은 “그들에게 CAD, CAM과 공작기계 작동법 등을 가르치면 얼마든지 훌륭한 기술인력으로 자랄 수 있고 가계에도 실질적으로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자립심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인력난도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그는 기대하고 있다.

두번째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다. 그는 “비록 소기업이지만 공장을 돌리는 것은 사회 각 기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작은 것이지만 사회에 환원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런 생각에서 구로지역 복지관에 매월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이곳은 홀몸어르신과 소년소녀가장 등을 돌보는 곳이다.

공간정밀 김대구 사장, 30년 금속가공 외길…"특수강 평면 가공에서 최고 기술 갖출 것"
아울러 음악봉사도 하고 있다. 클라리넷을 배워 ‘서울공고 OB밴드단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즐거운 음악으로 사회봉사에 나서기 위한 것이다. 쇠깎는 소리와 프레스 소리만 들리는 삭막한 신도림동 공장 골목에서 어느날 밤 아름다운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 퍼지면 김 사장이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연습하는 곡일 가능성이 크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