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훈 KAIST 교수가 만든 투명한 디스플레이 ‘트랜스월’을 사이에 두고 이용자들이 함께 터치하며 게임을 즐기고 있다. /KAIST 제공
이우훈 KAIST 교수가 만든 투명한 디스플레이 ‘트랜스월’을 사이에 두고 이용자들이 함께 터치하며 게임을 즐기고 있다. /KAIST 제공
“아이패드가 앞으로는 종이 공책과 같은 형태를 취할 수도 있어요. 굳이 전자제품이란 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거죠.”

지난 11일 대전의 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이우훈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사진)는 “컴퓨팅 기술이 일상생활 속에 더 많이 침투하게 될 것이란 점은 누구나 예측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이라며 “그에 맞게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실험하고 디자인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KAIST와 일본 규슈대에서 공부한 뒤 2002년까지 6년간 대우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유저인터페이스팀장을 맡았다. 2002년부터는 KAIST 교수로 ‘디자인 미디어 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미래에 어떤 제품들이 나타날지 예상해보고 이를 직접 시제품으로 만들어 보는 곳”이란 설명이다. 해외에선 미국의 MIT미디어랩과 디즈니리서치센터 등이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유리창이 커뮤니케이션 도구


투명한 유리창을 마주 보고 터치하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트랜스월’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이 교수가 이기혁 KAIST 전산학과 교수와 같이 만든 이 제품은 지난 7월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 최대 문화기술 전시회 ‘시그래프(SIGGRAPH) 2013’에서 ‘가장 돋보인 작품’으로 선정됐다. 투명 디스플레이가 미래에 어떤 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는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병원 무균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와 가족·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보다 편하고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며 “유리창을 통해 같이 게임도 하고 창을 사이에 두고 손이 스치면 진동으로 그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투명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를 어디에 활용하면 좋을지 제조업체들도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은 좁은 분야를 깊게 파고들다 보니 다른 분야로 사고를 전환하기 어렵다”며 “대신 저희 같은 디자이너들이 이런 기술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중요

트랜스월 외에도 이 교수는 많은 실험적인 제품을 만들어 왔다. 두더지 테이블이라고 그가 부른 ‘몰봇’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가상현실·증강현실 전시회 ‘라발 버추얼’에서 최고작품상을 받았다. 탁자 표면을 1만5000개의 작은 정육각형 핀으로 구성하고, 그 밑에 자석을 움직여 탁자 표면이 도드라져 보이게 한 것이다. 탁자를 덮고 있는 천 밑에 두더지가 돌아다닌다고 상상하면 쉽다.

그는 “손짓으로 두더지를 움직여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을 쓰러뜨리거나 자성을 이용해 쇠구슬을 끌어오는 식으로 게임처럼 활용할 수 있다”며 “스크린 속에서만 가능했던 게임을 실제 물리적 공간상에서 구현해보려 했던 시도”라고 말했다. 여러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탐구해보는 시도이다 보니 즉각 상용화는 어렵지만 물체의 표면을 움직여 게임에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양대 재활의학과와 함께 마비 환자들의 재활 치료에 쓰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우훈 KAIST 교수 "종이 공책같은 아이패드도 나올 수 있죠"
천의 표면에 움푹 들어간 구멍들이 생겼다 복구되는 식으로 시간이나 그림, 글자를 표시하는 ‘셰이드 픽셀’도 있다. 빛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움푹 들어간 구멍을 통해 그림자가 생기게 정보를 표시하는 새로운 방식의 디스플레이다.

이 교수는 “애플 아이폰이 세상에 충격적이었던 것은 없던 기술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기술을 잘 조합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앞으로 우리 주변의 물건들이 어떻게 변하고 기술들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