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新환율전쟁 위기 앞둔 한국의 선택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점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의 한국 환율 평가는 놀라움을 넘어 어이가 없다. 주요 내용은 원화가 2~8% 저평가돼 있고, 외환보유액이 과다하며, 외환시장 개입은 자제되고 개입 내용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주장 모두 한국 경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첫째, 원화 수준에 대해서는 6월 발간된 국제통화기금(IMF) 대외부문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권고로 각국 대외부문 정책을 평가하는 이 보고서는 각국 환율을 실질실효환율지수로 평가한다. 이 방법은 기준 연도가 중요한데 2007년을 기준 연도로 하고 있다. 2007년 한국의 연평균 환율은 달러당 929원으로 199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때와 비교하니 당연히 원화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평가대상 환율도 금년 중 가장 높았던 6월 환율이다. 산출방식도 회귀분석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편차가 크다.

둘째, 위기 시 필요한 외환보유액은 경상수입액의 30%인 1600억달러, 유동외채 1900억달러, 외국인 주식투자액의 30%인 1200억달러만 합해도 4700억달러로 10월 말 외환보유액인 3432억달러보다 많다. 셋째, 한국 외환시장은 규모도 작고 깊이도 얕아서 작은 자본이동에도 쏠림현상으로 환율변동이 심하다. 환율안정을 위한 질서 있는 개입이 불가피하다.

이 보고서 평가의 적절성 여부와는 별개로 이 보고서가 가져올 파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보고서는 ‘슈퍼301조’로 알려진 1988년 제정 미 종합무역법에 의해 1년에 두 번 미 재무부가 주요 교역대상국 환율정책을 평가해 의회에 제출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환율절상을 강요하기도 한다. 한국도 1988년 원화절상을 요구하는 환율협상을 줄기차게 강요받은 결과 달러당 환율이 1986년 881원에서 1989년 671원으로 급락해 1986년 처음으로 기록했던 경상수지 흑자가 1990년에 적자로 돌아선 적이 있다.

그런데 내년 초로 미뤄놓은 미 여야 재정협상과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전까지는 달러약세, 원화강세가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그 후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때 당연히 원화는 약세로 돌아서야 함에도 이번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한 경상수지 흑자국에 대해 약세를 용인하지 않고 환율협상을 강요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G20회의를 통해 압박도 병행될 전망이다. 미 경상수지 적자가 내년 4900억달러, 내후년 5200억달러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환율전쟁은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유입되는 신흥시장국의 통화가치 절상이 문제였지만 내년부터는 출구전략 이후 달러강세 속에서도 경상수지 흑자국 통화가치 절상이 요구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금년 한국의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흑자가 전망된다. 수출 증가보다 수입 감소로 인한 불황형 흑자다. 2001~2012년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11%였다. 그러나 금년 1~10월 수출은 463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에 그쳤다. 10월 수출이 사상 처음 500억달러 돌파라고 하지만 금년 수출이 5500억달러가 돼도 작년 수출 5479억달러 대비 0.4% 증가에 불과하다. 반면 1~10월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 유가하락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배럴당 10달러만 하락해도 연간 약 100억달러 수입액이 줄어든다. 이런 흑자는 경기가 회복되거나 유가가 오르면 급감하는 취약한 구조다. 이미 전년 고점 대비 35% 절상된 원·엔 환율 영향이 본격화되면 경상수지 흑자도 장담하기 힘들 수 있다.

내년 6월에도 IMF 보고서가 나온다. 미 재무부 보고서에 반영돼 환율절상 압력으로 이용되기 전에 잘못된 점은 G20회의 등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동시에 신환율전쟁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