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키아벨리와 오타쿠
올해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탄생 5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한 각종 학술행사가 열리고 군주론과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위인 탄생 몇 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자주 보는 일이지만 ‘책’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만큼 군주론에 담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키아벨리를 논할 때마다 동시에 떠오르면서 더 관심이 가는 인물이 있다. ‘내 친구 마키아벨리’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방대한 로마사를 15권의 책에 담아낸 ‘로마인 이야기’로 더 유명한 일본인 작가다. 작가는 마키아벨리가 걸었던 피렌체 다리 등을 거닐며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와 함께 호흡하고 사상을 이해하려 애쓰며, 시대적인 고뇌와 인간적인 고민을 공유했다. 냉혹한 정치사상가로 알려진 마키아벨리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렇게 일본인 작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로마사와 관련한 30여권의 책을 집필하고 유수 문학상을 휩쓴 시오노 나나미는 어지간한 학자보다 더 로마사에 대한 식견이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로 76세인 그는 일본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후 특별한 교육 과정을 밟지 않고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해 오늘과 같은 성과를 이뤄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수십 년 동안 모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에 매달려 사료를 연구하고 자신의 해석까지 담아 수십 권의 책을 펴낼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일본의 독특한 사회현상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오타쿠’ 문화다. 오타쿠란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마니아적 수준을 넘어서 비평가적 시각까지 갖춘 전문가를 일컫는다. 이들의 관심사는 거창하지 않으며 컴퓨터나 게임, 애니메이션, 자동차 등 다양하다.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유수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나 학위, 자격증 따위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유일한 자격 조건은 바로 순수한 열정이다. 필자가 시오노 나나미에 주목하는 이유, 마키아벨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빌려 그를 소개하고 싶은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다.

조강래 < IBK투자증권 대표 ckr@ibk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