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생존 부등식은 V>P>C(value>price>cost)…가격은 제품가치보다 낮고 원가보다 높게
“한 식품업체가 간장 가격을 500원 올린다고 합시다.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나겠죠. ‘원재료 값은 100원밖에 안 올랐는데, 폭리다!’라면서요. 정부도 간장 유통구조를 조사하겠다고 나섭니다. 결국 간장 가격을 올리겠다는 계획은 백지화되고 맙니다. 반면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나 애플의 아이폰은 원가 30만원밖에 안 되는데, 그 부분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국내 시장의 가격 형성은 비이성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가을학기 세 번째 시간. ‘가격 책정 전략’ 강의를 맡은 주우진 교수는 “한국은 정부가 가격에 너무 많이 개입하지만, 그럼에도 가격을 결정하는 전략은 있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다국적 식품회사는 영업이익률 10% 상회

기업의 생존 부등식은 V>P>C(value>price>cost)…가격은 제품가치보다 낮고 원가보다 높게
“그렇다면 국내 식품업체들이 돈을 많이 벌까요? 우량 기업이라고 하는 풀무원이나 CJ제일제당의 영업이익률이 4~5% 수준입니다. 반면 네슬레와 크래프트, 다농 같은 다국적 식품회사의 영업이익률은 13~14%에 달합니다. 그 수준을 10여년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삼성전자나 애플은 스마트폰 원가를 75% 정도로 잡고 있는데, 여기에는 인건비와 마케팅 등 비용을 모두 넣은 겁니다. 바꿔 말하면 영업이익률이 25%에 달한다는 얘기죠. 특히 애플은 삼성보다 같은 데 쓰이는 부품을 30%가량 싼 제품을 쓰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30%를 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기능이나 디자인을 주목하지, 가격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가격을 책정하는 전략의 힌트를 일부 보실 수 있습니다.”

주 교수는 가격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회사에는 수입이지만 고객에게는 비용이다. ②이익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크다. 매출이 100이고 영업이익이 10인 회사는 판매 수량이 동일하다고 할 때 가격을 10% 올리면 매출은 110, 영업이익이 20이 된다. 가격을 10% 올리는데 영업이익은 100% 뛰는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③매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④경쟁사가 금방 따라할 수 있다.

○“가격 결정 자유로운 해외가 수익성 높아”


주 교수는 이어 해외 수출을 늘려가고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A사 사장의 경험담을 전했다. “A사 사장이 제게 ‘외국에 나가서 한국에서 훈련된 정신 자세와 실력으로 납품하니까 주문 물량이 계속 늘어나더라’고 합디다. 외국 부품업체는 완성차업체가 부품 모양을 바꾸라고 하면 금형 설계 비용을 더 달라고 하고, 물량을 늘려달라면 초과근로를 해야 하니까 비용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랍니다. 설비가 고장났다고 하면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으니 기다려 달라고 하기 일쑤고요. 한국 기업들은 어떻습니까? 휴가 간 담당자까지 불러오잖습니까. 그러니까 포드나 폭스바겐 같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주문을 계속 늘려준다는 겁니다. 작년 자동차부품 수출 규모가 200억달러가량인데, 10년 전만 해도 완성차 수출 규모가 200억달러였습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은 거의 수출기업입니다. 국내는 규제가 너무 많고 해외는 가격 조절이 쉽기 때문입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용품업체들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운동화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15만원짜리 운동화 원가가 3만원인 경우도 흔하다. 이들은 가격 경쟁이 아닌 브랜드 이미지와 마케팅으로 경쟁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주 교수의 설명이다.

○“가격은 제품 가치보다 낮고, 원가보다 높게”


기업의 생존 부등식은 V>P>C(value>price>cost)…가격은 제품가치보다 낮고 원가보다 높게
주 교수는 가격을 제대로 정하는 것에 기업의 사활이 달렸다는 의미에서 ‘기업의 생존 부등식’으로 ‘V>P>C’를 제시했다. P는 가격(price)이다. 가격의 상한선 격인 V는 제품의 가치(value), 하한선인 C는 원가(cost)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마트폰의 가치는 실제 지급하는 가격인 100만원보다 높을 겁니다. 가치가 높으니까 가격을 높게 책정해도 되는 것이죠. 다만 현실적으로 우리 회사 제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긴 어렵습니다. 하한선인 원가도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회사 내에 이익을 내는 A사업부가 있고 이익을 못 내는 B사업부가 있다고 합시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B를 없애면 A도 적자를 내기 쉽습니다. B가 감당하던 고정비가 A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정비만 부담해도 ‘공헌이익’이 있다고 합니다. 원가 책정에서 공헌이익을 얼마나 잡을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가격을 결정할 때 가치와 원가 외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에 경쟁사가 있고, 한국은 ‘정부’와 ‘사회적인 압력’이라는 특수한 요인도 있습니다.”

주 교수는 가격 책정 과정이 일반적으로 ①주요 결정요인을 발견하고 ②기본 가격을 책정한 다음 ③상황별 가격을 책정하는 순서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PC를 만드는 회사라면 용산전자상가에 공급할 때와 백화점에 공급할 때 가격이 다르겠죠. 현금 고객과 외상 고객도 다르게 책정해야 하고요. 또 제품 주기가 짧기 때문에 앞으로 가격을 어떤 속도로 얼마나 떨어뜨릴 것인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경쟁사보다 가격을 한 발 먼저 내릴 것인가, 아니면 늦게 내릴 것인가도 수익성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0이 될 수 있다”

가격을 책정하는 주요 결정 요인으로는 △수요 △기업의 내부 상황(원가·판매목표·브랜드이미지 등) △경쟁 △법적 문제 △유통 등이 있다.

“수요 요인의 핵심은 가격 탄력성입니다. 회사의 매출은 가격 곱하기 판매량이죠. 가격을 1만큼 내렸을 때 매출이 1보다 많이 늘어나면 탄력적, 적게 늘어나면 비탄력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항공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보통 부르는데, 항공권은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고객이 모두 다른 경쟁사로 이동해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에 탄력성을 계산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가격전략을 잘못 쓰면 매출이 ‘제로(0)’가 되는 수가 있는 것이죠. 과거 국내 시장에서 기업이 쓰는 가격 전략은 출혈 경쟁이거나 아니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먹을 것을 각오하고 담합을 하는 양극단밖에 없었습니다. 양극단 전략을 쓰지 않고 경쟁하는 것이 전략적인 사고라고 하겠습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역시 가격에 고려해야”


가격을 결정할 때 기업의 내부 상황에서 고려할 부분은 원가와 단기적인 경영 목적, 미래 투자, 공헌이익 등이다. 공헌이익 때문에 이익이 안 나는 사업부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경영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주 교수는 강조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역시 중요한 대목입니다. 지금 삼성전자는 휴대폰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기마다 하나씩 내놓는 애플과 다른 점이죠. 다양하게 만들면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재고 관리도 복잡하니까 영업이익률은 애플보다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객층을 다양화하고 전체적인 시장점유율을 높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미래 수익과 현재 수익을 바꾸는 것도 가격 결정 전략입니다.”

○“거래 주체들의 힘 차이도 가격에 영향”

“다국적회사인 P&G는 세제와 휴지 등 온갖 생활용품을 취급합니다. 세제 분야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합시다. P&G는 우선 광고를 늘립니다. 그래도 경쟁사가 선전을 지속하면 마케팅에 더 투자합니다. 그래도 경쟁사가 치고올라오면 내버려둡니다. ‘좀 더 키워서 인수한다’로 바꾸는 겁니다. 네슬레와 다농 같은 거대 식품회사들도 가격을 낮춰서 경쟁사를 죽이는 전략은 쓰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인수합병(M&A)을 하는 사례 중 상당 부분이 상대 회사가 먼저 요청해서 이뤄집니다. 그 이유는 유통구조가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작은 식품회사는 월마트 같은 대규모 유통업체에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월마트가 가격 인하 등을 추가로 요구하면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네슬레에 인수를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네슬레는 월마트가 압력을 행사하면 ‘현재 공급 중인 수십~수백가지 제품을 모두 빼버린다’는 식으로 응수할 수 있다.

“시장은 결국 힘에 의해 결정됩니다. 힘에 따라 거래 조건이 형성됩니다. 외국은 제조업체의 이익률이 일반적으로 소매상보다 좋습니다. 한국은 그 반대입니다. 유통업체의 힘이 식품업체보다 너무 세기 때문입니다. 식품업계에도 강한 대기업이 나와야 유통구조와 가격이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높은 가격으로 ‘윈-윈’하는 길 찾아야”

주 교수는 이어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게임이론을 소개했다. 조건은 이렇다. ‘나와 경쟁사가 모두 높은 가격을 책정하면 3씩 이익을 갖는다’ ‘내가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상대방이 낮은 가격을 책정하면 나는 0, 상대방은 7을 갖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와 경쟁사가 모두 낮은 가격을 책정하면 2씩 이익을 갖는다’ 등이다.

“기회가 한 번뿐이라면 아마 나와 경쟁사 모두 낮은 가격을 제시할 겁니다. 가격을 높게 잡으면 리스크가 있지만, 낮게 잡으면 어떻게든 이익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기회가 수천번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와 경쟁사 모두 높은 가격을 제시해 3씩 가져가는 게 이익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이 이론을 가격을 결정하는 전략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다국적 기업은 대부분 3씩 가져가는 전략을 쓰는 반면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2밖에 못 가져갔습니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면 3을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