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본질 흐리는 엉터리 작명들
‘기초연금’ 수혜 대상과 지급방식을 둘러싼 정쟁(政爭)이 다시 끓어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형표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운영해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고 못을 박았고, 야당은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복지부 장관을 맡겨선 안된다”며 ‘일전(一戰)’을 벼르고 있어서다.

기초연금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이 “65세 이상 모든 고령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선거시절 공약에 수정을 가하면서 불거졌다. 공약을 지키는 데 소요될 엄청난 재정부담을 피하기 위해, 수혜 대상과 지급액을 국민연금 가입 유무(有無)와 수령액 규모에 따라 축소 조정하겠다는 게 골자다.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손해를 주는 것”이라는 반발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정부 해명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노령수당' '경로보조금'이 맞다

‘기초연금 논란’은 재정을 얼마나 쏟아부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고, 고령자들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해 덜컥 내놓았던 공약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건 이미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또 하나의 본질적 문제가 덮여져 왔다.

정책의 핵심을 오독(誤讀)하게 만든 ‘엉터리 작명(作名)’ 문제다.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정몽준 의원은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기초연금’이라는 명칭을 ‘노령수당’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수혜자의 재정적 기여가 없는 공적 부조에 ‘연금’이라는 이름을 붙여 공연한 오해와 혼란을 불렀다는 지적이다. 맞는 얘기다.

국민연금도 가입자가 납부한 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구조이므로, 사실상의 ‘사회적 부조’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혜자가 최소한의 납부금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기초연금’과는 구조가 다르다. ‘노령수당’이나 ‘경로보조금’으로 표현했다면 취지가 보다 선명하게 전달됐을 것이고, “왜 국민연금 가입자가 차별을 받아야 하느냐”는 오해와 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혼란 부추기는 '언어놀음'

양극화 과정에서 소외된 빈곤층에 최소한의 생활과 재기(再起)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복지 프로그램은 불가피한 사회적 과제다. 그런 복지정책이 온전하게 작동하려면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이름을 붙이는 게 중요하다. 얼핏 듣기에만 그럴듯한 미사여구(美辭麗句)는 사회적 혼란과 정치에 대한 혐오를 증폭시킬 뿐이다.

명칭만 그럴듯할 뿐, 정교하지 않은 설계로 인해 되레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상품’은 ‘기초연금’뿐이 아니다. 1억원 이하의 대출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한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국민행복기금’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 속으로 몰아넣는 ‘불행기금’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현 정부에서만 이런 문제가 제기된 건 아니다. 전임 이명박(MB) 정부 때도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온갖 아름다운 이름으로 치장된 서민금융상품을 내놨지만, 가계부채를 줄였다는 소식은 들은 바가 없다. MB 정부가 표방한 ‘공정 사회’는 시장 개입을 늘려 공무원 끗발만 키워준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의 줄임말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의욕만 앞세운 ‘구호(口號)정치’가 나라를 멍들게 한다.

이학영 편집국 국장대우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