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분단시대의 정치
지난 주말, 와병 중인 아버지를 모시고 딸아이까지 3대가 민통선 안에 있는 경기 파주시 장단면을 찾았다. 장단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어릴 적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곳이다. 아버지의 7대조이자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천공 이종성 대감이 기거하기 시작해 그 이후로도 여러 재상이 배출된 곳이다. 엄중한 사대부의 법도에 대해 들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할아버지의 독립투쟁을 쉬쉬하며 듣고 자란 곳, 급기야 여순감옥에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아버지가 접한 곳도 이곳이다. 산천조차 바뀌어버린 장단의 들녘에서 아버지는 80년 전을 복원하시려는 듯 하염없이 상념에 빠져 앉아 계셨다.

그동안 나의 가족사는 분단과 그다지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선대의 기반이 기호지방이어서 분단의 현실이 우리 가족에게까지 직접 간섭할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단의 그림자는 무관해 보이던 우리 가족에게도 이렇게 깊숙이 드리워져 있었다. 분단시대의 아픔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는 오랫동안 고향을 잃어버렸다가 불효한 자식에 의지해서 80여년 만에 지형이 바뀐 고향을 어렵게 찾으신 것이다.

필자는 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장단은 여전히 통제구역이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큰 아쉬움을 가슴에 다시 묻고 천진하게 넘실거리는 고향 들녘을 다시, 또다시 바라보며 마음을 거둬들였다.

아쉬움으로 침묵이 흐르던 귀갓길 차 안에서, 다시 시야에 잡히는 철책과 젊은 군인들을 보면서 정치인으로서 분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날 선 정치로 인해 우리는 남북으로 분단됐다. 결자해지, 정치는 분단의 갈등을 해소하고 극복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오히려 분단을 이용하고 입맛대로 조작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아닌가? 때만 되면 종북이니 극우니 하는 단정적 구호는 정치권에서 시작한다. 분단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지금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리기는커녕 분단을 조장해 사회를 가르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단의 갈등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오히려 정치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야를 떠나 정치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분단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분단을 응시하고 분단을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의 국민으로, 정치인으로 혼신의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을 조용히 해 본다.

이종걸 < 민주당 국회의원 anyang2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