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사장의 質경영, "다르게 생각하라"…고객과 소통으로 상품 차별화 '올인'
“오늘 도시락 미팅을 하면서 나눈 얘기를 꼭 상품 개발과 영업 전략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달 삼성화재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김창수 삼성화재 사장이 보험 관련 전문 자격증이 있는 10여명의 직원과 점심 시간에 도시락 미팅을 한 뒤 직접 올린 후기였다. 미팅에서 직원들은 배운 지식을 실제 업무에 적용한 사례들을 얘기했다.

김 사장은 지난 3월에는 판매실적이 우수하고 고객관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전국의 대표 설계사들과 도시락 간담회를 열었다. 2시간30분 이상 각 설계사의 영업 노하우와 신인 설계사 양성 과정에 대한 다양한 얘기가 오갔다.

김 사장이 바쁜 일정을 쪼개면서까지 그룹별 도시락 미팅을 계속하는 이유는 소통을 위해서다. 그는 소통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질(質) 경영’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질 경영’

작년 2월 취임한 김 사장은 틈 날 때마다 ‘질 경영’을 강조한다. 질 경영이란 질적 개선을 통해 양적 성장을 이루는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그는 “질 경영은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것처럼 쉽지 않지만, 이제 조직문화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조직이 커져도 신속·유연함을 잃지 않고, 상품을 차별화하면서도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하는 것 등이 우리가 추구하는 질 경영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질 경영의 목표는 고객 가치 증대로 모아진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들의 요구를 잘 파악해야 부합하는 상품과 서비스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2005년 도입한 ‘고객 패널 제도’다. 고객패널로 선발되면 삼성화재의 보험상품에 직접 가입하고 서비스를 체험한다. 또 경쟁사들의 마케팅을 분석한 뒤 개선사항을 제시하면 삼성화재 임직원들이 함께 해결책을 고민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콜센터의 자동응답전화(ARS) 메뉴가 이용하기 쉽게 바뀌었고, 자동차사고 긴급 출동서비스의 출동자 표준 서비스교육이 시작됐다. 특히 긴급 출동서비스에 여성 특화서비스를 도입한 데 대한 가입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질 경영은 이처럼 상품과 서비스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시장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경쟁력

“건강검진 확대로 암 발견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어 경영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향후 부담해야 할 위험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올해 초 암 보험 재출시를 둘러싸고 삼성화재 임원 회의에서는 이 같은 격론이 벌어졌다.

삼성화재는 2004년 암 보험 판매를 중지했다. 나가는 보험금이 자꾸 늘어나는데 위험률은 과거 데이터에 고정돼 있고, 의료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어 의료비 상승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보험업계 전체적으로 암보험이 사라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장에선 암보험을 찾는 수요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암이 한국인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되고, 치료비와 발병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보험사들은 암보험 재출시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삼성화재도 재출시를 고민하게 됐다.

검토 초기 실무자와 임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수지를 맞추기 어렵고, 예측 가능성도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사장은 고민 끝에 출시를 밀어붙였다. 회사가 안는 위험 부담이 크다고 시장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그는 “과거 상품의 약점을 보완해 위험이 적절히 통제되면서도 고객에게 이익을 돌려줄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며 “기왕 결심한 만큼 가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9년 만에 재출시된 삼성화재의 암보험이 ‘신(新) 유비무암’이다. 보통 암 수술로 입원하면 입원 4일째부터 보험금이 나오지만 ‘신 유비무암’은 입원 첫날부터 보험금을 지급한다. 암 진단비도 최고 1억원으로 8000만원 수준에 머물고 있는 다른 보험사보다 많다. 다른 회사보다 더 드는 비용은 관리와 마케팅 비용에서 절감하는 구조다.

시장의 호응은 컸다. 암보험을 주력으로 하는 대형 생명보험회사에 버금가는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상품, 시장, 고객에 대한 삼성화재만의 남다른 생각과 접근 방식이 이번에도 먹혀들었다는 평가다.

○“여직원·워킹맘은 핵심 자산”

지난 4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삼성화재 과장 승진자 161명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행사지만 분위기는 다른 기업들과 사뭇 달랐다. 참석한 신임 과장 중 여성이 50명으로 31%에 달한 것이다. 2010년(10%)에 비해 3년 만에 세 배가 늘었다.

삼성화재의 전체 간부 중 여성 비율은 10%대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국에서는 적지 않은 비율이다. 여기에는 ‘가족 친화적인 경영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김 사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수시로 “가정과 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이 중요하다”며 “특히 출산·육아 부담이 큰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기업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말한다.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모든 임직원이 정시에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독려하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이 회사는 여직원들이 육아 부담을 덜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울과 수원에 두 곳의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탄력 근무 시간제’와 ‘업무량 조정제’도 시행하고 있다. 여성 직원들의 휴식과 수유를 위한 ‘모성 휴게실’은 삼성화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김 사장은 작년 5월 ‘삼성화재 을지로 어린이집’을 선보이면서 “맞벌이 부부의 자녀에게 수준 높은 보육 환경을 제공해야 직원들이 육아 부담을 덜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판단에서 접근성이 좋은 도심 한복판 서울시청 옆 삼성빌딩에 위치를 잡았다. 2~4층의 3개층에 규모는 연면적 1900㎡에 달한다. 보육교사, 간호사, 조리사 등 18명의 교직원이 만1~5세 영유아 70여명을 보살피고 있다.

철학이 남다른 만큼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다.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던 이승리 삼성화재 과장은 을지로 어린이집을 이용하기 위해 성남시 분당에서 서울 종로로 이사까지 했다. 이 과장은 “육아 비용이 줄어든 데다 워킹맘 특유의 불안감도 해소돼 업무 효율로 이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