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너 하원의장(왼쪽)과 오바마 대통령.
베이너 하원의장(왼쪽)과 오바마 대통령.
‘정치 실종’으로 비롯된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부 폐쇄)이 엿새째 지속되고 있지만 정치권의 협상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공무원뿐 아니라 방위산업체 직원들까지 대량 일시 해고되기 시작했다. 증권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통계인 실업률 발표가 취소되는 등 셧다운의 파장과 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협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이라는 ‘경제 셧다운’이 닥칠 수 있다는 비관론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월가는 디폴트에 대비해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부채상한 협상 ‘낙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의회가 연방정부 부채상한을 높일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거기(디폴트)까지 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어제 디폴트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런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재무부는 연방정부 빚을 갚기 위한 보유자금이 오는 17일 300억달러 미만으로 떨어진다면서 16조7000억달러인 부채상한을 올리지 않으면 디폴트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공화·민주 양당 중진의원들은 비공식 회동을 하고 셧다운 중단과 부채상한 증액을 위한 타협안을 논의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출 일부 삭감, 세제 개혁 등을 전제로 잠정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부채상한도 증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물밑협상에도 불구하고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지도부는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을 유예하는 등 오바마 대통령의 양보가 없으면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타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공화당을 향해 “당장 희극(farce)을 멈추라”며 정부 셧다운과 경제 셧다운을 막기 위해 예산안과 부채한도 상향 조정안을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연방정부의 부채상한 규정은 ‘핵폭탄’과 같다”며 차제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깜깜’…엉터리 실업통계 우려

미국 노동부는 지난 4일 예정됐던 9월 고용통계를 발표하지 못했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무급 휴가를 떠난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셧다운이 길어지면 엉터리 실업통계가 나와 투자자뿐 아니라 중앙은행(Fed)의 정책 결정에도 큰 혼란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가 작성하는 실업률은 매달 14일께 시작되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셧다운이 이때까지 해소되지 않으면 11월 초에 나오는 10월 실업률이 제때 발표되지 못할 뿐 아니라 조사 시점이 달라 통계의 연속성과 정확성도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방부는 일시 해고된 민간인 직원 40만명에 대해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명한 ‘셧다운 기간 군인에 대한 정상 급여지급 법안’이 국방부의 민간인 직원에도 적용된다는 해석에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일시 해고된 연방공무원 80만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복귀하는 셈이다. 하지만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7일부터 3000명의 직원을 일시 해고하기로 하는 등 셧다운 파장이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편 하원은 셧다운으로 무급 휴가를 떠난 공무원들에게 업무 복귀 직후 보수를 소급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면 서명할 예정이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