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
잘나가던 기업도 자칫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쿼티자판과 특화된 이메일 기능으로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던 블랙베리도 끝없는 추락 끝에 매각을 앞두고 있다. 카메라 필름 하면 생각나던 코닥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존재조차 잊혀져 가는 신세가 됐다. 1960년대 세계 최고 항공사로 등극했던 팬암도 항공산업 지도에서 지워졌다.

세계 정상에 우뚝 섰던 기업도 순식간에 망하는 경우를 보면 현재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망성쇠는 기업에만 적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16세기 펠리페 2세 때 무적함대를 자랑하며 유럽 최강 국가의 지위를 누렸던 스페인은 이제 전 세계가 걱정하는 나라가 됐다. 17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던 오스만튀르크(터키) 제국의 수도도 이제는 관광명소에 불과할 뿐이다.

정상에서 추락하는 국가와 기업은 공통점이 있다. 변화와 위기에 발빠른 대처는커녕 그 전조도 감지하지 못하는 무기력 증세를 보인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찾아 볼 수 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도의 고위공무원 중에는 1960년대에 자신들이 한국 공무원들을 지도했다면서 ‘인생역전’에 대해 한숨짓는 이들도 많다. 인도네시아 관리들은 일본에서 받은 배상금으로 한국은 포스코를 세운 반면 인도네시아는 호텔을 지었다고 개탄한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가전에서는 LG전자가, 자동차에서는 현대·기아자동차가 남다른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배달민족이 세계에서 이렇게 인정받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영광은 물안개 같은 것이다.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 후손이 스페인이나 터키처럼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우리는 1960~70년대 고도성장 덕택에 아직 버티고 있다. 이제부터가 문제인데,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의 핵심 경쟁력인 역동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은 기업, 정부, 정치권의 파트너십으로 만든 작품이다. ‘일본주식회사’ 못지 않게 매우 효율적인 ‘대한민국주식회사’가 있었다. 당시는 기업과 국가가 죽이 맞아 정말 신나는 일들을 많이 벌였다. 지금은 이런 신바람 나는 움직임을 찾기 힘들다. 과연 무엇이 기업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일까.

기업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각종 규제법안들이다. 실효성은 없고 부작용만 많은, 기업 활동을 옥죄는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이기에 기업인은 냉소할 수밖에 없다. 법안실명제 등 제도적 개선이 논의되고 있지만 만들어진 규제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작금의 정부 정책방향도 기업인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예산 운용이 그렇다. 제도적 결함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지속 성장을 위해서도 약자 배려는 필수다. 성장 없이 복지가 있을 수 없지만, 복지 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재산의 유무에 상관없이 무조건 나눠주고 보자는 식의 포퓰리즘 복지는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세금을 내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처사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과 인프라 투자를 통해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투자를 통한 성장이 우선이고 복지는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피와 땀이 섞인 세금을 그냥 푼돈으로 나눠준다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더구나 국가 부채가 산처럼 쌓여 가는 형국이 아닌가.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인의 사기를 꺾고 불확실성만 증폭시킨다면 기업은 역동성을 상실하게 된다. 기업이 역동성을 잃으면 국가도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과연 미래에도 우리 후손이 외국에서 한국 기업 브랜드가 빛나는 자동차, 스마트폰, 가전제품을 보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역동성이 넘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기업인의 사기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렇게 기업인의 역동성을 살리는 게 대한민국을 다시 성장궤도에 올려놓는 최상의 방법이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