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이 25일 유동성 위기가 수면으로 드러난 뒤 처음으로 만기분을 갚기 위한 회사채 차환 발행을 포기하면서 금융시장 움직임이 급박해졌다.

개인 투자자들은 만기를 불과 며칠 앞둔 동양 회사채를 액면 금액의 반값에 처분하기 시작했고, 일부 기관투자가는 동양증권에 특정금전신탁 해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선 현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면서 시장 금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양 회사채 투자자 '패닉'…만기 6일 남기고 반값에 던져

○6일 남기고 ‘반값’ 처분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동양 회사채 중 비교적 거래가 활발한 편인 256, 257, 258회 채권은 지난 23일부터 가격이 추락하기 시작해 액면금액(1만원)의 절반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형제기업인 오리온이 동양그룹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부터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는 30일 만기인 256회 회사채는 전날 장내 시장에서 액면금액 4억100만원어치가 약 2억4400만원(액면 만원당 최소 5120원에서 최대 7300원)에 매매됐다. 채권을 사들인 상대방은 정상 상환에 기대를 걸고 위험을 무릅쓴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금리 연 8.5%인 이 채권이 만기 상환되면 불과 6일 만에 100%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기가 하루 더 가까워진 이날은 다소 상승한 7000원대에 약 6억원어치가 거래됐다.

개인 투자자들이 동양 회사채를 손절매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장내 매도가 유일하다. 동양증권 창구에서 투자를 권유받았다 하더라도 이를 되사달라 요구할 수 없어서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증권사 고유 계정으로 계열사 증권을 보유할 수 없는 자본시장법 규정 때문에 고객 요청이 있더라도 되사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신탁·CMA 자금 유출 우려

동양증권의 특정금전신탁과 CMA 가입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도 크다. 특정금전신탁은 지난 8월 말 기준 약 3조원, CMA 가입자금은 23일 기준 약 7조원에 이른다.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국내 채권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정금전신탁과 CMA 가입자금은 주로 채권에 투자되기 때문에 현금화할 경우 매물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날과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상대적으로 오른 것(채권가격이 내린 것)은 단기물 중심인 동양증권의 매물에 대한 실질적, 심리적 부담 영향이 크다”고 해석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날까지 이틀연속 0.02%포인트 상승해 5년 이상 장기물 금리 상승폭을 웃돌았다. 경쟁 증권사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영업에 활용하는 사례가 있지만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업계 전체로 확산될까봐 우려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대우증권 등 16개 증권사 임원은 긴급 간담회를 열고 ‘증권업계 공동의 위기라는 인식을 갖고 과당 마케팅을 자제하자’고 합의했다.

○새 회사채 발행에 ‘제동’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양은 기존의 빚을 갚기 위해 당장 필요했던 650억원의 현금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투자자 피해를 우려한 금융당국이 투자위험 설명을 보강해 11일 제출했던 회사채신고서를 정정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싸늘한 시장 분위기를 의식한 동양은 결국 발행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유동성 위기 우려로 전일 급락했던 동양그룹주는 일제히 반등에 성공했다.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동양파워 지분까지 전량 매각할 수 있다는 소식이 호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다만 추가 자금 조달이 힘들 수 있다는 불안 탓에 장 마감을 앞두고 상승폭을 다소 줄였다. 동양은 이날 0.15% 오른 814원, 동양시멘트는 4.96% 오른 2220원, 동양증권은 0.91% 오른 2770원에 장을 마쳤다.

이태호/송형석/하헌형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