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미당 서정주의 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다. 한가위에 온 식구가 마루에 둘러 앉아 풋콩을 넣으며 송편을 빚는 모습이 따스하고 정겹다. 단어도 모두 둥글다. 달밤과 마루, 식구와 송편, 풋콩과 뒷산 노루, 대수풀과 올빼미가 휘영청 달님과 함께 깔깔거리는 정경이라니…. 이처럼 한가위는 달빛이 가장 좋은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자 팔월(음력)의 한가운데 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리길을 마다않고 고향으로 간다.

“힘드니까 오지 마라”는 어머니 말씀은 해마다 꺼내 쓰는 사랑의 거짓말이다. 선물 보따리를 들고 저마다 고향집을 찾는 것은 그곳이 곧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이기 때문이다. 단풍 고운 길 가로 굴렁쇠처럼 보름달이 굴러가면 먼 산 능선 위로 그리운 얼굴들이 솟아 오르고, 감나무 가지에도 주렁주렁 달이 열리는 곳.

고향집이 ‘내집’보다 ‘우리집’인 것은 은은한 불빛 속에 장작 냄새가 배어나는 우리들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태중의 평화와 행복을 다시 느낀다. 일찍 익은 벼로 떡을 찌고 햇것으로 속을 채운 올벼송편의 맛은 또 어떤가. 햇밤이며 대추, 콩, 팥의 풋풋한 향도 어머니 같다. 올해는 태풍이 없고 적당히 가문 데다 알맞게 비까지 내려서 알곡들이 더 잘 여물었다고 한다.

온몸이 함박꽃인 어머니는 잘 익은 알곡처럼 손주들이 무럭무럭 자라라며 연신 손을 모은다. 쌀을 씻으면서도, 문 밖을 내다보면서도,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도 늘 그랬던 표정이다. 추석을 지낸 다음에는 마디 굵은 저 손으로 땀 흘려 농사 지은 고추, 참깨, 호박 등을 돌아가는 자식들 차에 또 바리바리 실어줄 것이다.

올해는 추석 연휴 내내 날씨가 맑아 보름달을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넉넉하고 배 부를수록 남을 돌아보는 것도 잊지 말 일이다. 어디에서는 멀건 시래기국에서 달을 건져내는 사람이 있고, 달빛 가득한 빈 사발에 얼굴을 비춰보는 외로운 이도 있을 것이다. 서로를 찔러대던 가시돋친 말들도 송편처럼 둥글둥글해지면 좋겠다. 어릴 때 잘못한 일들이 떠오를 때마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달빛처럼, 탱자나무 가시울타리를 노랗게 보듬어 안은 저 탱자와 유자처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