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13]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교육받은 글로벌 중산층이 정치·경제 움직이는 새 동력 될 것"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터키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국가에서 민주화가 가능했던 배경은 중산층”이라며 “교육받은 중산층이 세계 정치·경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산층은 단순한 성장보다 더 나은 환경과 청렴한 정부 등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라도 중산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 확장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며 “신흥국의 성장 속도가 점차 느려짐에 따라 신흥국의 성장에서 혜택을 보던 세계 경제 참여자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등 앞으로 10년 동안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지금은 중국 중산층이 현 정치체제를 지지하지만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오는 11월5~7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3’에 참석해 6일 특별세션Ⅰ(후쿠야마, 미래의 키워드를 말하다)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산층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전 세계 중산층은 이미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터키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에서는 이들이 민주화의 출현을 주도했다. 중산층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하게 행동한다. 또 교육, 직업, 돈, 행동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과 구분된다. 이들은 개인주의적인 데다 기대치도 높아 정부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원한다. 예를 들어 단순한 경제 성장보다는 더 나은 환경, 청렴한 정부 등을 요구한다. 이를 얻기 위해 저항과 정치적 반대를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정치적으로 이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새로운 정당이나 단체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중국 중산층도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까.

“중국 중산층은 이미 변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원저우 고속열차 사고 때 사건 은폐 시도를 막았고, 요즘엔 인터넷 등을 통해 부패 관료를 비판하고 있다. 중국 중산층이 단기간에 민주화를 이루고 싶어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민주화가 이뤄지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확실히 더 열린 사회를 원하고 있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신흥국들의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데.

“현 상황은 경기침체가 아니다. 경제 성장 속도가 느려졌을 뿐이다. 중국은 이제 중진국으로 들어섰고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성장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구조적인 개혁이 없으면 인도 브라질 등의 경제 성장 모델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유로존의 해체를 예상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유로존은 여전히 위기를 가져온 근본적인 문제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 국가 간 재정 통합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독일처럼 재정적으로 더 많은 책임을 가진 국가들이 통화 확장·이전 등을 통해 그리스 같은 국가를 부양해야 하는지, 이 경우 각국의 재정적자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제약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일치된 의견이 없다. 유로존은 지금 당장 깨지진 않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신뢰를 쌓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사회적 신뢰는 종교와 공유한 역사적 경험 등 정부가 쉽게 조종할 수 없는 문화적·사회적 요인에서 자라난다. 정부가 사회적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을 동등하게 대하는 법률 등의 규칙을 세워야 한다. 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기초를 쌓아주는 것이다. 이런 신뢰는 사회적으로 계급이 없는 평등한 국가에서 더 빨리 형성될 수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의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베 신조 총리는 지금이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이 지난 20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경제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통화 확장을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려는 정책은 다른 나라에 부정적인 효과가 있더라도 필요하다. 경제를 회복하지 못한 일본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금 국제관계에서 친구가 있어야 한다. 한국 미국 같은 민주적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외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베가 헌법 개정을 진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이 우경화 등으로 주변국과 껄끄러워진 사이 중국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데.

“중국의 부상은 현 국제질서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처럼 빠르게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연방의 부상은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중국의 부상이 다른 국가들을 흡수하는 등의 문제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은 현 국제질서 안에서 잘 협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는가.

“노동인력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경제에서 지속적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수준 높은 인적자원을 원하고 있다. 동시에 중산층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요구에 맞는 수준의 노동력을 키워내고 실업률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인재포럼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주의는 광범한 중산층에 근거하는 것인데 경제적으로 발전된 모든 국가에서 세계화와 기술 발전(인공지능화) 등으로 중산층이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중산층이 충분히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직업능력을 향상시키고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 후쿠야마 교수는 ‘사회적 신뢰’ 중시하는 역사철학자

[글로벌 인재포럼 2013]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교육받은 글로벌 중산층이 정치·경제 움직이는 새 동력 될 것"
“인류 역사의 결말은 서양의 자유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보편화되는 것이다.”(역사의 종언, 1989)

역사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한 1989년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1992년에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공산권이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해 헤겔과 마르크스적인 의미의 역사는 끝났다고 주장, 유명세를 탔다.

3년 뒤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지속되기 위해선 신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저서 ‘트러스트’를 통해 기존 주장을 강화했다.

역사의 발전이 끝나 더 이상의 진보는 없으리라던 후쿠야마의 주장은 1999년 발간된 ‘대붕괴 신질서’에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전작에서 “정보화 사회는 개인주의, 탈(脫)중심 등으로 사회적 자본을 재구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던 후쿠야마는 이 책에서 “산업화 이후 서구적 사회질서와 규범은 여러 번 붕괴했지만 다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06년 한 번 더 변신한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던 데서 벗어나 이들을 비판하는 ‘네오콘 이후: 갈림길에 선 미국’을 펴냈다. 후쿠야마는 “네오콘들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면 곧바로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9·11 이후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군사작전이 아닌 외교적 노력으로 국제정치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장 최근 발간한 ‘정치질서의 기원’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강력한 정치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후쿠야마는 한국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하에 빠르게 경제성장을 달성한 뒤 ‘사회적 동원’을 통해 1987년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모두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견디고 법치주의가 가능하게 했다고 진단했다.

후쿠야마는 일본인 3세로 1952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코넬대(고전학), 예일대(비교문학), 하버드대(정치학 박사) 등에서 공부했다.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 차장, 워싱턴 랜드연구소 선임 연구위원, 조지메이슨대 교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 등을 지냈다. 2010년 7월부터 스탠퍼드대 프리먼스포글리 국제학연구소에서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후쿠야마 교수 약력

1952년 미국 시카고 출생
1970년 코넬대 고전학 학사
1974년 예일대 비교문학 석사
1979년 워싱턴 랜드연구소 선임 연구위원
1981년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1989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 차장
1996~2001년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학과 교수
2005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
2010년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