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 개정안에 각 부처들이 반발함에 따라 최종안 확정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5일 열린 당정협의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 등이 세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법 개정안에 각 부처들이 반발함에 따라 최종안 확정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5일 열린 당정협의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 등이 세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내년도 세법 개정안이 국회 근처에 가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혔다. 세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기득권층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데다 일부 정부 부처까지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 감면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세수를 늘리려는 기재부의 계획이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다시 짠 세법 개정안, 이번엔 부처 이기주의로 '진통'

○부농에 과세, 농민 반발

정부는 당초 지난 13일 열린 차관회의에 내년 세법 개정안을 상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는 25일 차관회의로 미뤄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13일 차관회의 당시에는) 17일로 예정된 국무회의가 열릴지 말지 불투명해 차관회의 상정을 미룬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부처 간 조율 실패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세법 개정안은 입법예고 기간(올해는 8월9일~9월12일)에 각 부처와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최종 확정된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세금 감면을 축소하는 내용이 많아 부처 간 이견 조율에 진통을 겪고 있다.

농업 관련 세제가 대표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연수입 10억원 이상 작물 재배업자에게 2015년 소득분부터 소득세를 매기자는 기재부 안에 이의를 제기했다. 기재부 방침대로 세법이 바뀌면 상당수 농민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소득을 허위 신고하거나 농사 규모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농식품부는 기재부에 보낸 의견서에서 ‘과세가 불가피하다면 시행 시기라도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농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를 매출의 30%로 제한하는 방안도 자영업자와 농민, 농식품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재 가공되지 않은 농수산물은 부가가치세가 면제된다. 하지만 음식점에서 이를 살 때 7.4% 정도 부가가치세를 낸 것으로 치고 돌려주는데 이를 농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라고 한다.

기재부는 이 제도가 악용돼 음식점 등이 농수산물 매입액을 부풀려 신고하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 이 한도를 30%로 제한하는 내용을 세법 개정안에 담았다. 하지만 농민과 자영업자의 반발이 커지자 기재부는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3일 국회에 출석해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세액공제 한도를 50~60%로 높이는 방안을 제안했고 기재부도 당초 안(30%)보다 5~10%포인트 상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영농조합법인에 현물출자할 때 양도세 면제 기준을 높이는 방안에도 반대하고 있다. 귀농인의 영농조합법인 참여를 막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우왕좌왕하는 정부

내국인 카지노 입장료에 개별소비세를 물려 5000원에서 1만원으로 두 배 인상하는 방안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강원도 등이 반대하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달 30일 기재부에 낸 의견서에서 “내국인 카지노 입장료 인상으로 30%가량의 입장객 감소가 예상된다”며 “이로 인한 매출 감소는 13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재부가 개별소비세 인상으로 150억원의 세수 증대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지만 방문객 저하로 오히려 세수는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해 사회복지시설이나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금 세제 혜택을 줄이는 방안은 고액 기부자와 기부금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도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중소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과세 요건을 완화하기로 한 기재부 방안에는 중견기업들이 “우리도 완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복지 확대를 위해 중산층 이상 국민이 골고루 세 부담을 나눠 지게 하려던 정부 방침은 이미 ‘중산층 세금 폭탄’ 여론에 밀려 사실상 소득 상위 7%만 세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대폭 수정됐다.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6개월 이상 고민해 만든 세법 개정안이 기득권층의 반발과 정부 부처 간 이견으로 오락가락하면 정부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은 “중산층 증세 논란으로 이미 세법 개정안이 한 차례 수정된 상황에서 정부 부처 간 갈등이 불거진다면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며 “주무 부처인 기재부가 나서서 조속히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