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찬 회장(왼쪽)이 지난 14일 서울 한남동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세르지오 머큐리 대사로부터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받고 있다.
권기찬 회장(왼쪽)이 지난 14일 서울 한남동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세르지오 머큐리 대사로부터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받고 있다.
“발렌티노 정장에 아이그너 벨트를 차고 던힐 서류가방, 까르띠에 볼펜을 들고 갔어요. 그들과 같은 눈높이의 패션감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이 저만의 사업 노하우입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받은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회장(62)은 27년 전 베네통 사장을 찾아갔던 일화로 15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무리 큰 회사 사람이 찾아가더라도 패션에 대한 이해가 없다 싶으면 이탈리아에선 절대 거래하지 않는다”며 “30대 동양인이 무턱대고 찾아갔는데도 말이 잘 통했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기업들이 지금까지 같이 사업하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권 회장은 2006년 한국 패션업계 종사자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 경제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국가공로훈장 기사를 받았고, 지난 14일 이탈리아로부터 같은 훈장을 받았다. 두 나라에서 기사장을 받은 한국인은 권 회장이 처음이고, 이탈리아 훈장을 받은 한국 패션업계 종사자는 2008년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권 회장은 의류 완제품에 대한 수입 자유화 조치가 내려진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콜롬보, 베르사체, 이사이아, 지안 프랑코 페레, 아이스버그, 핑코, 체루티 등 30여개 이탈리아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다. 또 웨어펀인터내셔널의 자회사 오페라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이탈리아 작가들의 미술품을 전시해왔다.

권 회장은 “이탈리아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온 공로와 함께 오페라갤러리를 통해 회화, 조각 등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인에게 꾸준히 소개했다는 점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가 감사를 표현한 것”이라며 “단순히 자국의 제품을 판매했다는 점이 아니라 ‘문화 비즈니스’ 차원에서 공로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뒤 한양주택에 입사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근무하면서 명품브랜드에 대한 안목을 키운 권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 박사이자 국내 명품업계 1세대로 꼽힌다. 그는 “일부 국내 대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해외 패션 브랜드를 손해보면서까지 들여오는 건 문제”라고 쓴소리도 했다. 그는 “끌로에, 지방시, 발렌티노 등 이미 국내 사업 파트너가 있는 이탈리아 본사로부터 사업 제의가 온 적이 많았지만 저는 국내 파트너가 있는 브랜드는 아무리 사업성이 높다 해도 전혀 손대지 않았다”며 “오랜 기간 한우물을 파는 사업가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상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수입의류협회 회장, 국제무역인클럽 부회장 등을 지냈다. 2004년 41회 무역의 날엔 한국 명품산업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업계 최초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08년엔 한국무역학회 무역진흥상을 받았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