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후 20년 동안 종말이 캐릭터 때문에 울고 웃었죠. 배우로서 무엇을 해도 종말이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시간도 길었지만 이제는 진심을 다해 이 애칭을 사랑하게 됐어요. 대체 불가능한 저만의 브랜드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 주요 고객인 주부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김치 사업이 너무도 즐겁다는 곽진영. 바쁘더라도 재래시장에 들러 채솟값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천일염을 파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스스럼없이 맛도 본다.
김치 사업이 너무도 즐겁다는 곽진영. 바쁘더라도 재래시장에 들러 채솟값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천일염을 파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스스럼없이 맛도 본다.
종말이.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의 1990년대가 생생하게 응답하는 듯하다. 1992년 평균 시청률 49.1%를 기록한 MBC 주말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철부지 막내 종말이 역할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배우 곽진영(44)이 이제는 어엿한 김치 사업가로 변신해 기자와 마주했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감행했던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10여 년간 원하지 않는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매스컴은 이런 그녀의 사연을 한낱 흥밋거리로 사용했고 곽진영은 더 큰 상처를 받아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샘이 깊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녀는 골프·등산·여행 등을 하며 본래의 밝고 열정적인 자신으로 돌아올 준비를 했다. 결정적으로 그녀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어머니의 김치였다.

여수 갓 밭에 공장 차려

“제 고향이 전라남도 여수여서 어려서부터 갓김치를 항상 먹고 자랐죠. 연기자 시절에 선배들이나 지인에게 어머니가 직접 담근 갓김치를 선물했던 적이 많았는데 다들 너무 맛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이 점에 착안해 어머니의 손맛과 제 아이디어를 합한 김치 관련 비즈니스를 생각하게 됐어요. 김치 사업을 하는 연예인은 많지만 갓김치는 없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죠. 무엇보다 제가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김치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렇게 곽진영은 2010년 온라인 김치 쇼핑몰인 ‘종말이 김치(회사명은 종말이푸드)’를 오픈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당시 한 식품 공장과 협약을 맺고 위탁 생산(OEM) 시스템을 선택했는데, 그 공장에서는 곽진영이 요구한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김치를 만들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식 갓김치의 맛을 내려면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야 하는데, 단가가 맞지 않는다고 자꾸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어요. 이런 김치를 팔다 보니 스스로도 회의감이 들었고 손님들도 홈페이지에 ‘이딴 김치 너나 먹어라’라며 ‘악플’을 남긴 것을 보고 무척 속이 상했죠.”

당시 곽진영은 스트레스로 원형탈모를 앓았고 어머니 또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다. 그녀는 이대로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10개월간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그간 번 돈과 은행 대출 4억 원을 보태 김치 공장 건립에 팔을 걷어붙였다.

마침내 지난해 4월, 공장 준공과 함께 ‘진짜 엄마표 김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머니·남동생·올케 등 온 가족이 합심해 공장을 운영하는 터라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했다.

그녀의 공장은 갓 재배지로 유명한 여수 돌산의 상하동에 있다. 공장 주변이 온통 갓 밭으로 둘러싸여 있어 원재료 수급이 원활하고 재배한 갓의 수분 증발을 줄여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해풍을 맞고 자란 갓을 쓰기 때문에 품질과 함께 맛 또한 일품이다. 이처럼 곽진영은 단지 이름만 내건 사업이 아니라 직접 공장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홈쇼핑·미국 진출로 매출 ‘쑥쑥’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어요. 사업가는, 특히 음식을 파는 사람은 정직과 신뢰가 가장 큰 재산이고 소비자의 입맛과 선택은 냉정하다는 것이죠. 맛이 없으면 아무리 연예인이 파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두 번 다시 찾아주지 않아요. 건강한 식재료와 우리만의 레시피로 고객에게 만족을 주고 싶어 힘들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대형 마트나 홈쇼핑 등 거래처 분들도 여수에서 직접 생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점수를 후하게 주시더라고요.”

여수에서 가장 좋다는 돌산읍 상하동 갓만 사용하고 갓을 수확한 후 30분 이내에 천일염으로 절이며 고춧가루 대신 통고추를 물에 불려 갈아 사용하는 등 곽진영은 자신만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배·디포리(밴댕이의 다른 이름)·양파·다시마·송이버섯 등 천연 재료만 사용한 어머니만의 비밀 육수가 더해져 ‘종말이 김치’만의 맛이 완성되고 있었다.
갓김치 전도사를 자처하는 곽진영은 고객들의 요청으로 고들빼기김치· 간장돌게장· 전복장 등 여수의 식재료로 다양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갓김치 전도사를 자처하는 곽진영은 고객들의 요청으로 고들빼기김치· 간장돌게장· 전복장 등 여수의 식재료로 다양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이 사업을 하면서 갓김치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싶은 마음도 커요. 배추김치는 어느 식당에서든 먹을 수 있지만 갓김치는 내놓는 곳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또한 다른 채소에 비해 갓은 단백질·비타민A·비타민C·철분 함량이 높아요. 엽산이 많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좋고 성장기 어린이에게도 굉장히 좋은 음식이죠.”

곽진영은 지난해 공장 건립과 함께 유통망 확장에도 주력했다. 홈쇼핑, 해외 진출 등이 바로 이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의 한인 마트를 직접 찾아다니며 자신의 김치를 홍보했다.

“마트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손님들에게 김치를 먹어보라고 권했어요. 오래전에 이민 갔던 교포 분들이 마치 막내 동생을 다시 만난 것처럼 너무나 따뜻하게 환영해 줘서 제가 더 감사했죠. 반가워하시는 분들에게 ‘어머니, 종말이가 이렇게 커서 김치를 팔러 왔어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배우 겸 (주)종말이푸드 대표 곽진영, 갓김치 블루오션 개척…100억 매출 코앞
이렇게 노력한 덕에 온·오프라인(홈쇼핑 제외)에서의 올해 매출액은 약 30억 원에 달한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내년의 예상 매출액이 100억 원 규모라는 것이다. 올해 9월부터 국내 굴지의 육류 업체와 제휴해 갓김치를 납품하면서 사업 규모가 더욱 커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곽진영은 연기자로서 큰 인기를 누렸던 과거보다 지금의 삶이 훨씬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지탱해 준 가족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에서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고 나니 지금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사업 때문에 제 가족들이 행복해 하니 그 또한 뿌듯하고요. 김치 사업도 엄마가 없었다면 시도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이지만 곽진영은 배우로서의 꿈 또한 저버리지 않았다. 다만 지나친 욕심은 내려놓고 자신에게 자연스레 주어지는 기회에 충실할 계획이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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