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철 이마트 사장 "광고판·1+1 없애라…대형마트 본질은 싸게 파는 것"
인터뷰 허인철 이마트 사장

허인철 이마트 사장은 “자만에 빠졌다”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마트가 국내 대형마트 1위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한국에 진출한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마저 물리쳤지만 언제부턴가 ‘비용을 줄여 싸게 판매한다’는 대형마트의 본질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와 영업규제에 따른 매출 감소를 극복하는 것도 ‘업의 본질’을 되찾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대형마트 매출 감소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신흥국이 금융위기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있고 국내 경기 침체도 꽤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월 2회 강제 휴무로 연 매출이 5% 감소하는 영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매출이 줄어든 만큼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 매출은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비가 줄면 생산이 줄고 농어민과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습니다.”

▷환경이 안 좋은데 어떤 타개책이 있습니까.

“불필요한 비용을 많이 줄여야죠. 점포 천장에 달린 우드록 광고를 다 없애라고 했습니다. 대형마트에 온 고객이 상품과 가격을 살펴보지 천장에 달린 광고를 쳐다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드록 광고만 없애도 연간 80억원이 절감됩니다. 가격표 색상도 5가지였는데 빨강과 검정만 쓰기로 했어요. 이렇게 하면 잉크비만 연간 15억원이 줄어듭니다. 하나 값만 내도 두 개를 주는 ‘1+1’ 상품도 없애야 합니다. ‘1+1’에 맞춘 별도의 규격품을 만들어야 하고 매장 직원들이 일일이 상품을 묶어야 합니다. 큰 비용이 발생하죠. 가공식품은 이미 ‘1+1’을 없앴고 샴푸 비누 등 생활용품도 없앨 계획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시장 포화가 문제 아닙니까.

“국내 대형마트가 400개가량 됩니다. 점포 수로 봤을 때는 시장이 포화됐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소매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연간 국내 소매 판매액이 350조원인데 그 중 이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5%도 되지 않습니다. 이마트가 매출과 이익을 더 많이 올릴 여지가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는 결코 포화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점포를 새로 내서 성장을 했지만 앞으로는 상품과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1만명이 넘는 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요.

“상품 진열부터 판매가 시작됩니다. 매장에 물건을 진열해서 파는 것은 유통업의 본질에 해당합니다.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지금은 점포당 정규직이 250명인데 한때는 점포당 400명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더 늘려야 한다는 말이죠. 진열 사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 일에 대한 열의가 높아졌습니다. 복리후생이 좋아졌으니까요. 불필요한 비용을 많이 줄이고 있지만 종업원 복지에 관련된 비용은 줄이지 않을 계획입니다.”

▷해외 사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중국에서는 신규 출점을 하지 않고 있고 더 이상의 투자는 없을 것입니다. 중국은 인건비가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로 높아지고 있는 데다 사회복지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노동집약적인 유통산업이 성공하기 매우 어렵죠. 유통업은 좋은 부지를 확보하고 좋은 상품을 공급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 기업은 이 부분에서 중국 현지 기업을 앞서기 어렵습니다. 베트남은 호찌민에 부지를 확보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들어갈 시장은 아닙니다. 베트남은 정부 인허가를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헬스·뷰티전문점 확대계획은 있습니까.


“국내 소매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마트입니다. 이마트가 강해져야 신세계그룹의 다른 계열사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마트를 더 강하게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입니다. 헬스·뷰티전문점 분스는 출점을 중단했습니다. 상품 경쟁력과 구매력 면에서 아직 경쟁력이 부족합니다. 분스보다는 이마트 건강식품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최근 새로 생긴 이마트 점포엔 임대 매장이 적은데요.

“대형마트는 직접 매입한 상품을 파는 것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제조업체에 매장을 임대하는 방식이 중심이 되면 그건 대형마트가 아니라 백화점이죠. 홍삼이 많이 팔리면 홍삼 임대 매장을 들여놓을 것이 아니라 인삼 농가와 협업해서 더 좋은 홍삼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합니다. 그게 이마트가 가야 할 길이죠. 비슷한 예로 이마트의 자체 의류 브랜드 데이즈가 있습니다. 유니클로를 들여놓을 게 아니라 데이즈를 키워야 합니다. 데이즈를 키워서 유니클로를 이기자고 했습니다.”

▷후레쉬센터·미트센터 확대 계획은 있습니까.

“농수산물 저장 시설인 후레쉬센터와 축산물 가공 시설인 미트센터는 최근 이마트가 한 투자 중 가장 잘한 일입니다. 질 좋고 값싼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으니까요. 상해서 버리는 상품이 줄어 원가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올 겨울에는 후레쉬센터에 저장한 자두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로 소비 패턴도 많이 변했습니다.

“1인가구,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채소 과일도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아졌어요. 이마트몰을 ‘장보기몰’로 특화하고 있습니다. 경기 용인시에 온라인 주문 물량을 전담하는 전용 물류센터를 짓고 있습니다. 김포시에도 만들 생각입니다. 이마트몰을 ‘제2의 이마트’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동반성장과 갑을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일시적인 쇼처럼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마트는 성장 과정 자체가 동반성장이었죠. 20년 전 1호 점포인 창동점을 열었을 때 연매출이 50억원도 안 됐는데 지금은 15조원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함께 성장한 농민, 어민,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거래처가 2500개입니다. 유통업체, 특히 바이어들이 제조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한 태도로 공정하게 거래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엄중히 징계합니다.”

최만수/유승호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