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째 '천막노숙' 김한길 민주당 대표 "국정원 혐의 밝혀지고 있는데 대통령이 사과해야하지 않겠나"
16일째 서울시청 앞에서 천막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강경했다. 김 대표는 11일 기자와 만나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한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규명 △국정원 개혁 △책임자 처벌 등을 박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 ‘만남의 의미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과 회담 성사를 42일간 계속되고 있는 장외투쟁을 끝낼 명분으로 몰고가는 여권의 기류에 대해서도 마뜩잖아했다.

김 대표는 “나에게 명분을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추워서 천막을 접을 수는 있어도 대통령의 의지 없이 만나봐야 판이 더 깨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재오 정몽준 등 새누리당 중진의원의 천막당사 방문과 새누리당 일각에서 대통령과 정치권의 회담 필요성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회담 성사를 위한 물밑접촉설이 제기되는 데 대해선 “기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결기서린 강경방침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정원 개혁을 포함해 책임자 문책 및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대통령 사과까지, 천막을 걷을 그의 명분과 청와대 측이 제시할 수 있는 협상카드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장내외 병행투쟁이라지만 정기국회 파행책임을 면할 수 없는 데다, 최근 ‘이석기 사태’ 후유증으로 조경태 최고위원과 초선 의원들이 연일 격돌하며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곤혹스런 대목이다.

김 대표는 “이번 정권 검찰의 조사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혐의가 일부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요구사항 중 지나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 벌어졌는데 책임자 한 명 자르지 않고, 대통령 유감 표명조차 없이 그냥 넘어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통령이 (선거개입) 지시를 하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 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 4ㆍ3사건에 대해, 독일 메르켈 총리가 나치의 행위에 대해 사과한 것은 책임유무와 상관없이 대통령 자리가 그런 자리이기 때문”이라며 “헌정을 유리한 이런 일을 일찍 해결하지 못하고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간 것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사과해야 할 사항”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야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이 박 대통령 욕을 했을 때 북한을 나무랐다”며 “난 대통령을 인정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게 정권 차원에서도 낫다”고 말했다.

그는 장내외투쟁 뒤 노숙투쟁까지 이제 더 이상 쓸 만한 카드가 없다는 것을 시인했다. 김 대표는 “천주교 15개 교구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관련해 시국선언을 했는데, 이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야당과 국민의 이러한 요구에 이번 정권은 국정원을 앞세워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번 정권 평가와 관련, “지난 6월 국회를 지나면서 이번 정부가 꼭 통과시켜야 할 법이 없다는데 깜짝놀랐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정권의 철학을 담아 정책을 시행하려면 법 근거가 있어야 해서 정권 초기엔 여당이 많은 법을 요구하는 데 그런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이건 이번 정권이 내세운 창조경제가 실체가 없다는 얘기”라고 했다.

장악력이 부족하다는 당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당 대표 100일 만에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폐지하고 중앙당 당사를 대폭 줄여서 이전하고 당직자들도 대폭 줄이는 등 개혁을 이뤄낸 것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정기국회 등의 일정에 관해선 장내외 병행 투쟁과 선별적으로 상임위원회에 참여하는 게 당 지도부 방침이다. 김 대표는 “상임위에서 열리는 현안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민주당 의원을 독려하고 있다”며 “하지만 새누리당이 짜놓은 일정대로 따라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12일 김 대표가 노숙투쟁 중인 서울광장 천막당사를 찾는다. 안 의원이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로 해석돼 주목된다.

손성태/김재후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