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사회에 임원 인사권 주는 집행임원제 의무화 철폐해야"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수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며 국정과제 수행 차원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려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재계 요구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재계는 25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전면 재검토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특히 ‘집행임원제 의무화’ 같은 독소조항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의견 수렴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부분 손질론’과 재계의 ‘전면 백지화론’ 중 어느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지 주목된다.

◆상법 개정안 손질 움직임

25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17일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을 일부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선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들에게 보유 주식 수와 뽑을 이사 수를 곱한 투표권을 부여해 선호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집중투표제 도입은 유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묶은 뒤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방안도 제한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입법예고한 개정안에서는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감사위원 모두를 이사와 분리 선출하고 이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도록 했다. 여기서 한발 물러나 감사위원회 전체가 아닌 1명의 감사만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게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 중에 관련부처의 의견을 들었다”며 “앞으로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와 협의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가 제출한 의견서를 살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관련 부처들은 정부안을 확정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부처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상당 기간 조율이 필요해서다. 앞으로 법제처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도 받고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등을 거치면 원안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해당사자들 간에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 다른 법안보다 논의 기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를 규제하는 것과 관련해 강한 단계부터 약한 단계까지 5단계가 있는데, 약한 단계의 제도를 도입하는 쪽으로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결국 정부를 거쳐 국회에서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행임원제 의무화는 독소조항”

재계는 상법 개정안 전면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을 부분적으로 손질하는 것보다 현행 상법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른바 ‘3% 룰’을 일부 완화하고 집중투표제를 장기 추진 과제로 돌리는 정도로는 기업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집행임원제 의무화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재계가 집행임원제에 반대하는 것은 사외이사들의 권한 남용을 우려해서다.

집행임원제를 실시하면 회사 대표나 마찬가지인 대표 집행임원과 일반 집행임원을 이사회가 선임하고 해임한다.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감사위원회의 3분의 2 이상과 이사회 과반수를 반드시 사외이사로 두도록 하고 있어 사외이사들이 집행임원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게 된다.

현행 상법상으로는 대표이사가 임원 인사를 하지만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부분 회사 실무나 경영 경험이 없는 사외이사들이 임원 인사권을 행사하게 된다. 집행임원들이 사외이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의사 결정과 집행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게 재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추광호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상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집행임원 범위를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뿐 아니라 다른 임원으로 넓히면 기업이 사외이사 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집행임원제에 ‘3% 룰’이 결합하면 부작용은 더욱 커진다. 사외이사인 감사를 뽑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해외 펀드들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상법 개정안에 따라 최대주주가 아닌 외국계 펀드나 기관투자가가 이사회 구성부터 집행임원 선임 역할까지 하게 되면 최대주주는 경영권을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 집행임원제

감독 기능을 하는 이사회와 별도로 업무 집행만 전담하는 임원을 두는 제도. 사외이사가 과반수인 이사회가 대표 집행임원과 집행임원을 선임하고 해임할 수 있다. 입법예고된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감사위원회를 둬야 하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집행임원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정인설/주용석/정소람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