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문화의 특별한 만남] 정갑영-이명옥 "문화융성요? 시장 키우고 스타작가 만드는 게 급선무죠"
미술과 경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은 인류의 역사가 생생하게 입증한다. 미술이 융성한 시기는 늘 경제적 번영기와 일치하며 수많은 명작은 번영의 자양분을 먹고 탄생했다. 그러나 오늘의 국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구촌 미술시장의 전반적인 호황에도 국내 미술시장은 허약 체질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학자인 정갑영 연세대 총장과 아트북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을 연세대 언더우드관에서 만나 국내 미술계 침체의 원인과 활성화 방안을 들어봤다.

▷두 분이 2007년 《명화 경제 토크》를 함께 펴내셨지요. 책을 내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나요.

이명옥 회장=원래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판사 측에서 먼저 기획해 출간을 제의해왔어요. 정갑영 총장님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 어떻겠느냐고 해서 흔쾌히 동의했죠. 경제학의 대중화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노력하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정갑영 총장=저 역시 지면상으로 익히 알고 있던 분이었는데 공동 집필 파트너로서 적격인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작업을 해 나가면서 이 회장의 박학다식과 맛깔스러운 글솜씨에 놀랐어요. 호흡이 너무 잘 맞아 시작한 지 다섯 달 만에 책이 나왔죠.

정갑영 연세대 총장(왼쪽)과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이 연세대 언더우드관에서 대담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07년 미술과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명화경제 토크’를 펴낸 뒤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정 총장은 미술과 경제의 밀접한 관계에 두루 조예가 깊었고 이 회장은 한국 미술시장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갑영 연세대 총장(왼쪽)과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이 연세대 언더우드관에서 대담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07년 미술과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명화경제 토크’를 펴낸 뒤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정 총장은 미술과 경제의 밀접한 관계에 두루 조예가 깊었고 이 회장은 한국 미술시장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수학 과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과 융합을 시도했는데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까.

이 회장=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 수학·자연과학 등 창의성과 관련된 부분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미술은 시장 메커니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적 접근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죠.

▷미술과 경제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를 책 속에서 든다면.

정 총장=중세 이후 기독교 성화에서는 푸른 색 안료로 ‘울트라 마린’만 사용했습니다. 이 안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한 광물인 청금석에서만 추출할 수 있다는 희소성 때문에 금보다 비쌌대요.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성화에 고귀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부여한다는 만족감이 높은 가격을 만들었죠. 경제학적으로 얘기한다면 한계효용이 높은 것이죠.

이 회장=고흐의 그림은 일본의 쇄국 정책과 관련이 있어요. 에도 막부는 모든 나라에 빗장을 걸고 오직 네덜란드에만 교역을 허용했습니다. 덕분에 네덜란드에 오래 전부터 채색 목판화인 우키요에가 소개됐고 고흐는 자연스레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았죠. 그가 파리 시절 그린 ‘탕기영감’은 배경에 우키요에를 잔뜩 배치해놔 문화적·경제적 교류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각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죠.

▷미술시장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정 총장=그림은 인간이나 사회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경제 현상이 그대로 투영됩니다. 호황 때는 사치, 정략결혼, 부동산 투기 같은 것들이 테마로 다뤄지는 게 그 증거죠. 반면에 불경기에는 핵심적인 것보다 미술시장 같은 주변부의 것들이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이 회장=미술은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교황청과 메디치가가 돈줄을 쥐고 있어 로마와 피렌체가 미술의 중심이 됐고, 19세기에는 도시 재건과 함께 파리에 돈이 모이면서 세계적인 미술의 센터가 됐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풍요의 시대를 구가하면서 세계 미술의 헤게모니를 쥐었습니다. 최근 세계 유수 화랑들이 베이징에 지점을 내고 있는 것도 그곳에 돈이 모이기 때문이죠.

▷최근 국내 미술시장이 침체돼 있는데요. 국제 미술시장과 대조적인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 회장=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상당히 작습니다. 중국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컬렉터 숫자가 적어요. 미술품이 옥션에서 거래된 게 고작 10년밖에 안 됐어요. 중국은 미술시장 형성의 역사는 짧지만 컬렉터가 수백만에 달할 정도로 저변이 두텁습니다.

정 총장=문화시장이 형성되려면 소득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합니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겨우 넘었으니 아직은 걸음마 단계죠. 문화시장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호의적이지 않고요. 설상가상으로 미디어에도 미술과 관련한 부정적인 사례만 비춰져 사람들이 미술품을 공개적으로 거래하길 꺼리고 있습니다. 시장의 음성화를 부추길 수밖에 없죠.

▷문화시장 융성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이 회장=우선 스타급 작가를 키워야 합니다. 백남준 이후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을 대표할 만한 브랜드 작가가 없습니다. 문제는 구조적인 데 있어요. 현재 국공립 미술관에서는 특정 작가의 개인전을 열 수 없습니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기 때문에 특정인의 개인전을 열 경우 엄청난 민원에 시달리니까요. 상업화랑 쪽에서도 스타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냥 해외에서 뜨고 있는 작가를 데려와 장사하는 수준입니다. 대중문화계의 스타 만들기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요. 영국의 찰스 사치처럼 세계적인 컬렉터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림 수집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풍토가 개선돼야 합니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해법을 제시한다면.

정 총장=문화가 융성하려면 먼저 문화시장이 형성돼야 합니다. 일정 수준에 오르도록 정부가 발벗고 나서 문화의 사회화에 기여해야 합니다. 작가를 지원하고 시장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이 회장=학교 교육과 연계해서 창의성 교육을 공격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각 생활 커뮤니티에 미술관이 작은 도서관처럼 들어가서 미술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바람직하죠.

▷문화적 저변 확대를 위해 어떤 인재를 양성해야 할까요.

정 총장=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려면 여러 분야에 대한 융합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고 이들과 서로 소통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세대가 1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송도캠퍼스에 레지덴셜 칼리지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런 취지입니다. 신촌캠퍼스의 백양로 재개발 프로젝트도 문화공간 확충을 통한 정서 함양에 주요 목적이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은 다양한 가치를 서로 수용하지 못해 발생하는데 문화는 그런 갈등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최근 한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갈등 비용이 GDP(국내총생산)의 27%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비문화적인 경쟁 위주의 편협한 전공이 이런 문제를 야기한 것이죠.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를 놓고 화랑가의 반발이 거셌는데요.


이 회장=이미 올해부터 시행됐으니까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정부가 주택경기가 안 좋으면 다양한 부양책을 내놓는 것처럼 후속 조치가 필요합니다.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유보하거나 기업의 미술품 구매 등에 세제 혜택을 부여해 영세한 화랑의 손실분을 메워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경제학적으로 이런 세제를 어떻게 봅니까.

정 총장=거래 단계에서 세금을 많이 부과하면 거래가 위축되고 음성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 가격을 파악하기 어렵죠. 연말에 양도세가 얼마나 걷혔는지 보면 그 성과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음성적 거래가 문제인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 회장=언론에서 미술품 기증 같은 선행 기사를 많이 소개해야 합니다. 부유층이 작품을 사서 미술관에 기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면 좋겠죠. 화랑도 판매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정한 시장 가격이 형성될 수 있고 당국에도 경영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설득할 수 있죠.

정 총장=부정한 축재와 미래 가치를 보고 그림에 투자하는 행위는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

1951년 전북 김제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무처장, 원주캠퍼스 부총장을 거쳐 2011년 2월 총장에 올랐다. 정부 자문기구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법무부 정책위원장과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산업조직학회 회장, 한국동북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1년 다산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열보다 더 큰 아홉’, ‘만화로 읽는 경제’ 등 교양 경제서를 통해 경제학의 대중화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문화·예술 콘텐츠 메이커.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과 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요즘 화두인 융합 현상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명화 경제 토크》《이명옥의 크로싱》등을 내놨다.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 한국공학한림원 문화기술융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성신여대와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 대학원,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했고, 목포MBC 교양국 PD를 거쳤다.

정리=정석범/박병종 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