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업계 간접광고(PPL) 경쟁 '활활'…차량에 현금까지

드라마에 나오는 자동차를 보면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꼭 수입차를 탈까? 고민이 있으면 자다 말고 일어나서라도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 검사도 조폭도 왜 같은 브랜드의 차량만 몰까? 서로 딜러라도 소개시켜 주나?
수심에 찬 주인공을 동네나 한바퀴 산책시키는 대신 굳이 올림픽대로를 달리게 하는 것은 바로 수입차업계의 자동차 간접광고(PPL) 때문이다.

업계의 PPL 전쟁에 불이 붙었다.

요새 잘 나가는 드라마치고 자동차 PPL이 붙지 않은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 드라마만 경쟁? 자동차도 맞수!
한국닛산은 8월 초 방영을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투윅스'에 차량을 지원하고 나섰다.

살인 누명을 쓰고 백혈병에 걸린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장태산(이준기)을 뒤쫓는 강력계 형사 임승우(류수영)와 검사 박재경(김소연)은 각각 닛산 알티마와 스포츠카 370Z를 몰고 추격전을 펼친다.

장태산의 옛 애인 서인혜(박하선)는 박스카 큐브를 타고, 장태산을 괴롭히는 조직원 김선생(송재림)은 도심형 크로스오버 무라노를 몬다.

주연이건 조연이건, 착한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모두 닛산을 애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 드라마인 SBS 수목드라마 '주군의 태양'에는 인피니티가 들어갔다.

인색하고 계산적인 대형 쇼핑몰 사장 주중원(소지섭)의 애마는 디젤 세단 인피니티 M30d. 여주인공 태공실(공효진)을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쇼핑몰 보안팀장 강우(서인국)는 크로스오버 인피니티 FX에 여주인공을 태운다.

또 아시아 최고 모델이자 가수인 태이령(김유리)은 의외로 취향이 소박한지 3천만원대 엔트리급 차량인 인피니티 G25스마트를 탄다.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는 SBS 주말 드라마 '결혼의 여신'에 차량을 선보인다.

라디오 작가인 송지혜(남상미)는 한밤중에 포커스 디젤을 몰고 김현우(이상우)의 집까지 내달리고, 김현우는 지혜가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는 대신 골목에 불법 주차한 자신의 대형 SUV 익스플로러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린다.

지혜의 약혼자이자 재벌2세 검사 강태욱(김지훈)은 중형 세단인 링컨 MKZ를 타는데 꼭 차 안에서 멍하니 생각에 빠지거나 차 옆에서 고민거리를 곱씹는다.

업계의 방송 PPL은 2010년 6월 지상파에서도 PPL을 통한 특정 브랜드의 노출을 허용한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광고주개발팀의 관계자는 21일 "협찬은 브랜드를 밝힐 수 없어 효과가 떨어진다는 불만이 많아 PPL을 도입했다"면서 "구체적으로 몇회에 걸쳐 몇초간 로고를 공개할 지는 작품마다 따로 협의한다"고 전했다.

◇ 악당도, 영웅도 자동차 취향은 하나?

차량 PPL은 보통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의 제안으로 시작된다.

작품의 분위기나 인물에 맞는 차량을 골라 해당 브랜드에 운을 띄우면 방송용 차량과 예산이 충분한 지, 브랜드 이미지와 맞는 지 등을 검토해 결정하는 식이다.

PD, 작가, 배우, 채널 등의 인지도와 제작사의 파워도 중요한 변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명 작가나 PD가 작품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면 브랜드 쪽에서 PPL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사실 드라마는 흥행 요건을 갖춰도 결과가 복불복이라 먼저 접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귀뜀했다.

지상파 드라마보다 오히려 케이블 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 '우리 차를 제공하겠다'는 요청이 빈번하다.

매회 우승 상품 등을 소개하면서 꼬박꼬박 제품을 노출해 마케팅 효과가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 드라마 PPL은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품을 선보이고 더 확실하게 구매 의욕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인기가 높다.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차량만 제공했는데 이제 국내 수입차 브랜드가 늘어남에 따라 경쟁이 심해져 현금으로 협찬 비용을 별도 지급해야 한다"고 전했다.

PPL의 철칙은 한 작품을 두 브랜드가 나눠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브랜드가 모든 인물의 차량을 조달하고 캐릭터가 아주 유별난 경우에만 예외를 둔다.

업계 관계자는 "가난한 캐릭터는 수입차를 태울 수 없기 때문에 국산차를 사용하도록 용인한다.

반대로 엄청난 부자일 때는 슈퍼카가 필요한데 협찬받기가 어려워 대여하거나 제작진이 아예 중고차를 구입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PPL이 늘면서 코바코의 미디어렙을 거치지 않고 협찬 형태로 브랜드를 노출하는 불법 PPL도 성행하고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로고 노출의 횟수와 시간 등 까다로운 규제를 피할 수 있고 제작진은 광고 수익을 고스란히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유진 기자 eugen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