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무자식 상팔자?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올초 즐겨보던 TV 드라마 얘기를 꺼내볼까 한다. 바로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다.

이 드라마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3세대 가족들이 북적북적 모여 사는 모습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과 인간애를 담아내며 훈훈한 감동을 전해줘 한동안 필자를 TV 앞에 붙들어 뒀다. 자식이 없어야 행복할 것 같다고 외쳤던 이들이 역설적으로 가족의 사랑을 일깨워준 셈이다. 비단 나만 느꼈던 감정은 아니었던지 이 작품은 많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핵가족이 보편화된 시대, 바빠서 서로 얼굴도 잘 못 보고 사는 현대인들에겐 참 낯선 광경일 법도 한데 구식으로 치부되던 전통적 가족 이야기가 공감을 얻은 것이다.

드라마 속 가족이 그려내는 일상의 에피소드에 젖어 가만히 눈을 감으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반항아였다. 그 시절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기억은 손꼽을 정도에다 음악을 한답시고 18세 이후로 내 인생을 찾겠노라 선언한 철없고 호기로운 청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기억 속 아버지는 늘 산처럼 크고 엄한 존재였고, 우리는 한동안 서먹했다. 그렇게 철옹성처럼 영원히 굳건할 것 같았던 아버지가 올초 건강이 악화돼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셨고 그 일은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뿔싸, 만시지탄이라 했던 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탄식하며 도란도란 살갑게 가족과 함께 보낸 기억을 더듬다가 자못 부끄러워졌다. 가족을 병풍 삼아 꿈을 이루고, 결혼을 하고, 사업가로 살며 쉴 새 없이 달리느라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 나이 마흔 줄이 되어서야 명필의 작가가 그려낸 타인의 일상 속에서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한때는 부모님께 대궐 같은 집을 마련해드리고, 호사스런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가족의 행복이라는 게 별 거 없더라. 매일 살 부딪히고, 눈을 보며 얘기하고, 맛있는 것 있으면 나눠 먹고, 때론 아웅다웅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일상에서 온전하게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부모님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진정한 가족의 행복이 생각보다 훨씬 지척에 있음을 확인한다. 그것은 우리가 열광하던 여느 드라마 속 가족의 모습처럼 매일 지지고 볶는 생활 속에 행복의 열쇠가 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을 산다는 것 아닐까? 현재진행형의 시간 위에 우리의 삶이 존재하고 행복이 숨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마워요 김수현 작가님! 내게 행복의 보물지도를 펼쳐주신 그대.

김태욱 < 아이패밀리SC·굿바이셀리 대표 ktw22@iweddi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