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망언 나올 때마다 방문객 늘어…웃지못할 성과"
‘너무 많은 것을 받은 사람.’ 김능진 독립기념관장(64·사진)이 모바일 메신저서비스 카카오톡에 올려놓은 자기소개 글이다. “공부도 많이 안 했는데 일찍 교수가 됐고, 환갑을 넘어서는 독립기념관에서 봉사할 기회까지 주어졌어요. 제가 가진 능력에 비해 보람된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과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광복 68주년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한 김 관장은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35년간 충남대에서 제자를 길러온 자신을 공부를 별로 안 했는데 교수가 된 ‘운좋은 사람’이라 소개했다. 김 관장이 독립기념관을 맡은 지 지난달로 꼭 2년이 됐다. 1년 남은 관장 임기 중의 계획을 물었다. “특별한 계획이랄 건 없습니다. 기념관 잘 가꾸고, 보다 많은 국민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뭐. 기념관 운영을 잘하는 게 이 시대에 제가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1919년 안동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고(故) 김병우 선생 손자인 김 관장의 집안은 그 자체가 ‘독립기념관’이다. 조부와 부친은 물론 일가친척 모두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거부해 학교를 못 다녔거나 옥고를 치렀다. 의사였던 부친은 만주로 피신, 평생을 사회봉사하며 살았다.

그런 집안 출신으로 평생 책 속에 파묻혀 살던 그가 독립기념관장이 된 계기는 2011년 청와대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독립기념관장을 공모하고 있는데 한번 지원해보라는 것. 몇 번의 고사 끝에 관장직에 지원, 그해 8월 취임했다.

‘기술혁신 경영’을 전공해 30년 넘게 후학을 양성하고 전국국립대경영대학원장협의회장(1998년)까지 지낸 김 관장. 취임과 함께 기념관 운영에도 경영학을 접목시켰다. 대표적인 작품은 지난 2월 문을 연 ‘독도학교’다. “보통 기념관이라고 하면 역사적 기록물을 전시하는 곳이죠. 독립기념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의미에서 독도학교는 ‘제품 혁신’입니다. 국민들을 교육하고 단합시킬 수 있는, 예전에 없던 ‘제품’이죠.” 올해부터는 일하는 방식도 바꿨다. 거의 매달 열리는 각종 전시회 준비를 예전처럼 외부 기획사에 맡기지 않고 88명의 직원들이 직접 한다. 김 관장은 이를 비용은 줄이고 성과는 높인 ‘공정 혁신’이라고 불렀다.

“방문객 숫자가 많이 늘었어요. 올 들어서만 90만명이 기념관을 찾았고, 연말이면 사상 처음으로 150만명 돌파가 예상됩니다. 독도학교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프로그램을 만든 덕도 있지만 최근 급속히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 영향도 크다고 봅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나올 때마다 방문객 숫자가 늘어나는 웃지 못할 성과라 해야 할까요.”

광복절에 부쳐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다. “독립기념관은 고통·눈물의 역사가 아니라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숨쉬는 곳입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더 많은 국민들이 독립기념관을 찾아 하나된 뜻을 보여줄 때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