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중산층 증세’라는 반발 여론을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내놓은 세법개정안은 국회에 가보기도 전에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일로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진의’가 무엇이었든, 대통령이 사실상 전면거부 의사를 밝힌 이상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법개정안은 현 부총리가 주도해 수개월을 고심한 끝에 내놓은 박근혜 정부의 첫 작품인 동시에 현 부총리의 첫 작품이다. 그런 결과물이 최고 통치권자에 의해 ‘원점 재검토’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면 부총리는 뭔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게 마땅하다. 부총리는 단순히 상부의 지시에 따라 시키는 대로 일만 하면 되는 그런 실무형 공무원이 아니다. 자신의 주도로 추진한 정책이 관철되지 못했다면 그에 상응한 책임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세법개정안에 대한 정치권의 반대가 모두 타당한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세금은 무조건 내기 싫다는 일반 대중의 반발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부총리가 할 일은 바로 이런 오해들과 싸우고 조세정의의 원리를 분명히 해가는 것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현 부총리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기업 부유층은 그대로 놔둔 채 유리지갑만 털어 중산층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야당 측의 논리도 극복하지 못했다. 설명도, 설득도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약속한 마당이다. 문제가 확산되자 어제 저녁 그는 서민, 중산층의 세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경제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지 않으면 공직자 영혼의 존부를 의심받게 된다.

“부총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핀잔을 들어왔던 그다. 소신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대통령의 의중만 살핀다는 이유였다.

현 부총리는 이런 평가에 대해 “내가 안 보인다니 안경을 닦아드려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제 레토릭의 순간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