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중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처음으로 로펌 취업 제한 처분을 받은 이재원 전 법제처장이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고위공직자들의 사후 취업과 청탁 규제 등을 강화하자는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청구 결과가 다른 공직자들의 향후 행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주목된다.

11일 안전행정부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 전 처장은 지난달 말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2년간 취업 제한은 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정심판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정처분 등으로 권리 등을 침해받은 경우 행정기관에 제기할 수 있는 권리 구제 절차다. 위원회는 통상 해당 처분의 위법·부당성을 판단해 인용·기각·각하 처분하며 이 전 처장의 청구에 대해서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측 반박 답변서를 받은 후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인용이 되면 해당 로펌에 대한 2년간 취업 제한은 효력이 사라진다.

앞서 이 전 처장은 법제처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법무법인 율촌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지난 4월 “해당 로펌에 2년간 취업을 제한한다”는 통보를 내렸다. 2009년 서울고검 형사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율촌이 소송 대리를 맡은 사건에 결재를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고위공무원 등이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퇴직일로부터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펌 중에는 율촌을 포함해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장, 대륙아주, 화우, 바른 등 17곳이 대상이다. 당시 일부에선 “고위공직자 부패 방지를 위해 당연한 처분”이라는 의견과 “검사 시절 당연히 하는 업무인 사건 결재를 이유로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권리 침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이 때문에 이번 청구 결과가 향후 공직자들의 로펌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해당 제한 규정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있는 상황에서 당시 처분이 고위공직자 심사 강화의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 장·차관급의 퇴직 후 취업에 대한 심사가 시작된 이래 로펌행이 저지당한 것은 이 전 처장이 유일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2011년 전관예우금지법 발효로 퇴직 시 근무하던 지역에서의 개업이 일정 기간 제한되면서 로펌행을 택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급증했다”며 “용역이나 자문계약을 맺는 식으로 간접 취업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한편 안행부에 따르면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 심사를 받은 퇴직 공직자 1822명 중 93.5%에 달하는 1704명은 승인을 받았고 118명(6.4%)은 탈락했다. 최근에는 감사원 전직 감사위원 2명(차관급)이 대기업 계열사의 사외이사로 내정됐다가 “해당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감사하는 기관을 감사했던 전력이 있다”며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승인을 거부해 취소됐다.

고위공직자 취업제한

현행 공직자윤리법 제4장 17조는 재산등록 의무가 있는 (고위)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이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퇴직일로부터 2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때는 예외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