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화록 실종…정치 실종
여야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란 구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연일 소모적인 정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 임시국회 도중에 돌발적으로 재점화된 NLL 대화록 논란에 매달려 한 달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전문가까지 동원해 국가기록원에서 36만여건에 달하는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훑고서도 끝내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성 발언의 진위를 가리자는 당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사초(史草) 실종’을 둘러싼 의혹만 확대 재생산되는 형국이다. 여야 모두 음모론에 가까운 가정과 확인되지 않은 정황을 들이대며 상대를 밀어붙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양보 없이 파국으로 치닫던 정치권이 검찰(또는 특별검사) 수사라는 출구전략을 꾀하고 있지만, 일은 국회가 저질러 놓고 수습은 사법 심판대로 떠넘기는 무책임한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은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을 가리기 위해 어렵사리 출발한 국정원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도 ‘아니면 말고’식 폭로전과 입씨름으로 얼룩졌다. 25일 생방송으로 중계된 특위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야당 위원장의 ‘편파적인 회의 진행’을 문제 삼으며 전원 퇴장하는 등 파행을 거듭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별 성과 없이 ‘용두사미’로 끝났던 과거 국조특위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쯤되니 “정치판만 있고 정치는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양당 중진 의원들이 나서 자중을 요구할 정도다. 7선의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대선이 끝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선거 연장선상에서 정치적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제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19대 국회 개원과 함께 의원들이 입을 모아 외쳤던 ‘민생 국회’는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정치권의 책임 방기 속에 민생은 멍들어가고 있다. 경제 활성화와 서민생활 보호를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세제정책에 당장 집을 사야 하나, 전세를 얻어야 하나 고민하는 서민들에게 NLL 대화록이나 국정원 의혹은 ‘먼 나라 얘기’일 것이다. 민생은 외면한 채 ‘그들만의 싸움’에만 열을 올리는 작태가 국민을 짜증나게 한다는 걸 의원들이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이정호 정치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