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금융연구원…금융권 세대교체 주도
금융가의 시선이 다시 금융연구원으로 쏠리고 있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장 출신인 이건호 국민은행 부행장(54)이 19일 국민은행장에 선임, 은행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면서다. 새 정부 출범 후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50), 서정호 금융감독원 자문관(49) 등을 배출했지만, 민간 은행 CEO 자리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고 이론가의 시장 진입이라는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설립 20여년 동안 축적한 연구역량과 인재 풀을 바탕으로 금융권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나서는 모양새다.

○금융연구원 출신 첫 은행장 탄생

잘나가는 금융연구원…금융권 세대교체 주도
금융연구원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민간기업 연구소장이나 금융사 임원직에 금융연구원 출신들이 올라간 적은 많지만 은행장은 처음 나왔기 때문이다.

이 행장뿐 아니라 최근 금융연구원 출신들이 금융권 요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금융위의 정찬우 부위원장과 이상제 상임위원, 임형석 국제협력관(국장)이 연구원 출신이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지난 4월 금감원 자문관에 위촉됐다. 이장영 금융연수원장 역시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금감원에 입성해 부원장까지 지냈다. 서근우 금융연구원 상임위원은 최근 한국은행 부총재보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민간 분야에서도 금융연구원 출신의 활약이 돋보인다. 삼성그룹 안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이 대표적이다. 양원근 전 KB경영연구소장은 금융연구원에서 다진 실력으로 우리금융지주 설립, 예금보험공사의 공적자금 투입 등을 담당해 외환위기 극복에 일조했다. 최흥식 하나금융지주 사장은 1999년 금융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지동현 KB국민카드 부사장 역시 2000년 40대의 젊은 나이에 조흥은행 부행장으로 스카우트돼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다.

○이론과 실무 겸비한 조직문화

금융연구원 출신들의 이 같은 활약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론과 실무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조직문화 덕을 보고 있다고 진단한다. 금융연구원 보고서는 금융당국의 정책 수립에 주로 반영되고, 이는 은행 보험 등 민간 영역에 곧바로 적용되는 과정을 거친다. 연구원들도 자연스럽게 ‘연구-정책 생산-실무 적용’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일각에선 금융연구원이 기존의 연구 및 정책 보좌 역할을 넘어서 자리 찾기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당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활용해 금융연구원 출신들을 각종 기관의 주요 보직에 밀어 넣으려고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시각은 잘나가는 금융연구원에 대한 견제와 시샘의 성격이 강하지만 일정 정도 타당성도 있다는 평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금융연구원이 ‘민간 연구기관’이라는 점을 활용할 때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민감한 경제현안이 있을 때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아닌 금융연구원을 공청회 주최 기관으로 내세운다”고 전했다.

한 은행장은 “실력 있는 연구자들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많지만 시장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부 등과의 유착 논란에서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 나가느냐에 따라 금융연구원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