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차 때문에 왕복 2차선 도로가 꽉 막혔다. 그 와중에 택시 한 대가 경적을 울려대며 반대 차선을 막고 있었다. 시간에 쫓기던 그는 참다못해 택시로 다가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운전사가 노려보았다. “조금만 양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꿈쩍도 않았다. 그가 “아무래도 운전을 가장 전문적으로 하실 줄 아는 분이 먼저 길을 열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고 하자 그제야 어깨를 으쓱하며 차를 뺐다. 명문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 경험을 들려주며 “원하는 걸 얻는 대화의 지름길은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라고 했다.

막말 정치꾼들의 '막장 드라마'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긍정어법을 쓰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부드럽게 얻는다. 부정어법을 쓰는 사람은 금세 대결상황을 만든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에 나오는 ‘하지만’과 ‘그리고’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서를 훌륭하게 잘 만들었네. 하지만 여기에 이런 질문 하나 더 넣어주면 어떨까?” “문서를 훌륭하게 잘 만들었네. 그리고 여기에 이런 질문 하나 더 넣어주면 어떨까?” 이럴 때 부정적인 접속어 ‘하지만’은 칭찬까지도 비판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쓰기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는 말. 속되게 함부로 뱉는 막말은 독화살과 같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릴 수도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정치권의 막말 퍼레이드에 진저리가 난다. ‘귀태(鬼胎)’니 ‘히틀러’니 ‘미친×’이니 ‘주전자 선수’니 해괴한 상소리로 ‘막장 드라마’를 주도하는 판에 네티즌들의 막말은 나무랄 수조차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권 전체의 냉소를 부르게 돼 있다. 혀가 입안의 도끼라는 것을 모르니, 혀를 찰 노릇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치 풍자가 일상화돼 있지만 최고 지도자에게 거친 말을 쏟아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2009년 상·하원 합동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거짓말”이라고 고함 질렀던 의원은 백배사죄하고 징계까지 받았다. 게다가 그의 후원회 간부들조차 ‘부끄럽다’며 떠나버렸다.

처칠과 링컨의 유머는 어디 갔나

작은 불이 큰 숲을 태우듯 세 치 혀가 세상까지 망칠 수 있다. 오죽하면 일본 총리들의 자문으로 유명했던 야스오카 마시히로가 “혀는 심장계통에 속하므로 혀를 무분별하게 쓰면 심장이 상한다”며 겁을 줬을까.

상대를 생각하는 대화(對話)는 없고 일방적으로 던지는 발화(發話)만 넘치는 요즘, 세상을 부드럽게 만들고 정적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품격 있는 유머와 기지를 활용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처칠은 모난 데가 많아 일찍 정을 맞은 아버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특유의 유머로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했다. 날선 공격을 받는 청문회에서도 상대방이 기분 좋아할 만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줄 알았다.

링컨 역시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는 공격을 받았을 때 “거참, 그렇다면 왜 이 못생긴 얼굴을 갖고 나왔겠습니까?”라는 폭소탄으로 멋진 승리를 거뒀다.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 없는 마차와 같아서 길 위의 모든 조약돌에 부딪칠 때마다 삐걱거린다”(헨리 W 비처)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지혜로운 혀는 세상을 선하게 하고 어리석은 혀는 제몸을 벤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으라는 경구도 그래서 나왔다. 고작 9㎝밖에 안 되는 혀가 90평생을 좌우하느니….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