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출발한 ‘국민의 정부’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외환위기 극복이었다. 거대 조직 재정경제원은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위원회, 그리고 금융감독위원회로 분리되면서 새롭게 출발했다. 이규성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은 항상 국가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지금도 많은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1990년 5월 재무부장관을 끝으로 정부를 떠났던 그는 학계에 몸담고 있다가 8년 만에 컴백했다. 그는 부총리제가 폐지되고 예산과 금융 관련 권한도 없어져 위상이 크게 약화된 재정경제부의 수장으로서 오로지 경륜과 열정으로 경제팀을 이끌어 6·25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경제팀은 실력이나 카리스마 등 모든 면에서 당대 최고의 공무원으로 평가받던 진념 기획예산위원장과 이헌재 금감위원장,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이었지만, 이 장관은 이들을 부드럽고 조용하게 잘 조율했다. 금융과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경제 각 부문의 시스템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국가신인도가 제고되고 위기는 빠르게 극복돼 갔다.

1999년에 접어들면서 국민의 관심은 ‘우리는 과연 언제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IMF 졸업론’이었는데,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1999년 2월 2일 외신기자회견에서 의미 있는 발언을 남겼다. “IMF 졸업이 IMF의 자금 지원이 마무리되는 시기라고 한다면 내년이 될 것입니다. IMF 졸업이 국제기준에 부합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면 아마 5년 정도는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IMF 졸업이 예전의 무분별한 차입경영, 부정부패, 과소비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졸업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유럽의 사례를 보면 IMF가 우리나라에 분명 가혹하게 대한 점은 있지만, 우리에게 그동안 누적된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했던 IMF의 교훈은, 숙제는 미루지 않고 그때 그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상시 구조조정’의 중요성을 우리는 IMF를 계기로 인식했던 것이다.

요즘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몇몇 분야는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다. 15년 전 이규성 장관이 경고했던 그 무절제와 비효율에 우리가 다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