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아닌 의사가 회계법인 임원 됐다 "한국 의료산업 해외서 잘뛰도록 측면지원"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없습니다. 의사 면허증은 있습니다.”

국내 최대 회계·컨설팅법인 삼일PwC에서 헬스케어·바이오·제약산업을 총괄하는 주연훈 전무(54·사진). 공인회계사가 아닌 의사 출신인 그가 불과 3년 전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최근 회계법인의 ‘꽃’인 파트너(임원) 자리에 올라 화제다. 삼일PwC 직원은 3800여명. 이 중 파트너는 220명이며 의사 출신은 주 전무가 유일하다.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한 주 전무는 스스로를 ‘뉴프론티어(개척자)’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 전무에겐 ‘1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주 전무는 국내 1호 ‘경영의사’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다 1995년 삼성서울병원이 처음 도입한 ‘경영의사’로 발탁됐다. 경영의사란 진료 대신 병원의 전반적인 경영과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는 의사를 말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 삼성 계열사들이 투자한 의료벤처기업 365홈케어 대표를 맡았다. 2002년엔 삼성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의료신사업팀장, 라이프케어연구소장 등을 거치며 의사가 아닌 의료 경영 쪽에서 처음으로 의사 출신 임원이 됐다. 삼일PwC로 자리를 옮긴 건 2010년.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이 헬스케어 분야 사업을 키우기 위해 주 전무를 영입했다.

그는 삼일PwC에서 헬스케어·바이오·제약 부문의 인수합병(M&A) 자문, 회계감사 외 사업 전략 수립, 해외 진출 자문 등을 총괄한다. 주 전무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한국 의료기술의 세계화다. 그는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세계 경제성장률(GDP)이 0.6%에 그친 반면 의료산업 성장률은 6.9%에 달했다”며 “한국은 줄기세포, 진단기기, 천연 신약 등 의료신기술 부문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의료기술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금융·컨설팅이 따라주지 못해 활발한 해외 진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주 전무는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전문 디벨로퍼(기획·마케팅·자금조달·사후관리까지 담당하는 시행사)가 필요하다”며 “한국에는 현재 의료기술 전문 디벨로퍼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해외 진출을 위한 전문 자문서비스 영역을 개척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병원과 제약사가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수 있도록 현지시장을 조사해 전략을 짜고, 펀드를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주 전무는 “바이오헬스케어 펀드를 만들어 잠재력 높은 기업에 선별 투자하고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스몰 챔피언’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