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꿈에 본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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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바르게 최선 다하라 가르치셨던
40주기에 불러보는 아버님의 애창곡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
40주기에 불러보는 아버님의 애창곡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
1990년 4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뮤추얼 펀드인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던 피터 린치가 46세의 나이에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은퇴의 변에서 “나의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에 돌아가셨다. 나는 항상 이 나이를 생각해왔고, 이제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월가를 떠난다”고 밝혔다. 피델리티의 마젤란 펀드는 린치가 맡고 있던 13년 동안 연평균 29%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기에 그의 은퇴는 월가에 큰 충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도 아버님이 4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기 때문인지, 당시 그 뉴스를 접하면서 남다른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은 일찍 상경하셔서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지병으로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3년 여름에 돌아가셨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7월, 학기말 고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와 동생 그리고 어머님 앞에서 아버님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금도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시다가 눈을 감으시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 당시 아직 어렸던 필자에게는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면 “이럴 때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아버님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곤 했다.
하지만 아버님이 필자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40대에 접어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아버님의 임종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필자는 어린 나이에도 삶과 죽음이 백지장 하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쳤던 것 같다. 아버님은 그렇게 덧없는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바르게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린 필자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과거 공직에 있었을 때나 금융계에 몸담고 있는 지금이나 이 가르침은 필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지표가 되고 있다.
또다시 7월이 돌아왔고, 올해는 아버님의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이미 긴 세월이 흘렀지만 필자에게는 바로 어제의 일같이 생생하기만 하다. 아버님의 조언이 필요하거나 그리울 때면 아버님의 애창곡 ‘꿈에 본 내 고향’을 흥얼거리곤 한다. 어째 올 7월에는 더 많이 읊조리게 될 것 같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
필자도 아버님이 4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기 때문인지, 당시 그 뉴스를 접하면서 남다른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은 일찍 상경하셔서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지병으로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3년 여름에 돌아가셨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7월, 학기말 고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와 동생 그리고 어머님 앞에서 아버님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금도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시다가 눈을 감으시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 당시 아직 어렸던 필자에게는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면 “이럴 때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아버님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곤 했다.
하지만 아버님이 필자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40대에 접어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아버님의 임종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필자는 어린 나이에도 삶과 죽음이 백지장 하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쳤던 것 같다. 아버님은 그렇게 덧없는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바르게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린 필자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과거 공직에 있었을 때나 금융계에 몸담고 있는 지금이나 이 가르침은 필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지표가 되고 있다.
또다시 7월이 돌아왔고, 올해는 아버님의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이미 긴 세월이 흘렀지만 필자에게는 바로 어제의 일같이 생생하기만 하다. 아버님의 조언이 필요하거나 그리울 때면 아버님의 애창곡 ‘꿈에 본 내 고향’을 흥얼거리곤 한다. 어째 올 7월에는 더 많이 읊조리게 될 것 같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