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브란덴부르크 문
철학자 칸트에게 핍박을 가했던 독일 군주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1744~1797)다. 그는 말년의 칸트에게 종교철학과 관련한 강연과 저술활동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독일 프로이센 왕국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방탕하고 나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군주는 칸트의 무신론적 철학사상을 무정부주의적이며 왕정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빌헬름 2세가 독일의 정신적 아이콘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세웠다는 건 역사적 아이러니다.

이 대형 상징물의 공사는 1788년부터 4년 동안 이뤄졌다. 궁전 건축가 카를 고타르트 랑그한스가 그리스 아폴로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인 프로필리아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가 샤도가 만든 사두마차 상이 문 위에 조각돼 있다. 빌헬름 2세는 마차에 탑승한 여신으로 평화의 여신 아이레네를 조각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평화의 문으로 선포한 것이다.

정작 이 문을 처음 통과한 인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1806년 예나지역에서 프로이센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의 열병식을 이곳에서 가졌다. 그는 사두마차상을 분해해 파리로 가져가 루브르박물관에 전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1814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이기고 파리에서 마차상을 우여곡절 끝에 찾아왔다. 이후 프로이센은 마차에 탄 여신에 철십자상을 끼워 넣으면서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로 바꿔 불렀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이때부터 독일인들에게 승리와 자긍심을 상징하는 문으로 다가왔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군대들이 개선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문으로 자리잡았다.

역사는 브란덴부르크 문의 상징을 또 한번 바꿨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데올로기의 대립 아래에서 이 문은 냉전과 분단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베를린 높은 담벼락의 끝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었던 것이다. 1963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이곳에서 유명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연설로 고립돼 살고 있는 베를린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레이건 대통령도 이곳에서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향해 동서냉전의 종식을 촉구했다. 1990년 독일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가 만나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은 분단의 아이콘을 벗어던지고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엊그제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 앞에서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빈곤 실업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핵 감축 등 평화 노력을 제안했다.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이제 인류의 또 다른 숙제를 해결하는 상징으로 부각될지 두고 볼 일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