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예술가의 삶
인간은 본래 남자와 여자 한 쌍의 등을 붙여 놓은 괴물이었다는 신화가 있다.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뜻이 일치할 때가 없었다. 이 꼴을 보다 못한 신(神)은 큰 칼을 가져다 둘의 등판을 갈라주면서 마음껏 살아보라고 했다. 가을이 되자 한동안 자유롭게 다니던 여자는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어느 틈엔가 등이 써늘한 걸 느꼈다. 아무리 옷을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써늘함을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신을 다시 찾아갔다. 신 앞에 다가섰을 때 담요를 뒤집어쓰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여자의 등 뒤에 붙어 있던 남자였다고. 신은 아무 말 없이 둘을 묶어 보내주었다. 발걸음이 전처럼 가볍진 않았지만 등이 따스해진 둘은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과 함께 하루는 여자가 가고 싶은 곳으로, 하루는 남자가 보고 싶은 곳으로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흔히 예술가의 생애는 고독하다고 한다. 베토벤이 그랬고, 쇼팽이 그랬고, 위대한 음악의 아버지 바흐도 생전에 행복한 날들은 몇 날 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난히 주변을 잘못 만나 외로운 것이라기보다 성격 자체가 남과 어울리는 걸 덜 즐겼기 때문이고, 추구하는 세계가 잘 닦여진 개성과 고도의 창의성을 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여러 사람이 어울려 즐거운 나날만 보낸다면 어찌 그들의 음악에서 나름대로의 향취가 풍기겠는가.

한 곡의 연주를 위해 홀로 바쳐야 하는 시간은 실로 엄청나다. 또한 그 시간 동안 철저히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직 나 홀로 져야 하는 철저한 고독이며, 해산의 고통일 수밖에 없다.

커다란 콘서트홀에 관중은 이미 가득 차고 객석의 조명이 서서히 꺼질 때 연주자의 떨리는 마음 또한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는 외로움이다. 나를 향해 쏘아보는 관중의 무수한 공격에 나는 철저히 혼자가 돼 단단히 무장하고 대항해도 한없이 밀리는 것 같은 기분은 표현할 길이 없다.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연습할 때의 철저한 고독에 뒤서지 않는 외로움이다. 하지만 음악이 연주자의 내부에서 무르익어 청중 앞에 나타날 때는 더 이상 고독한 존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고 시공을 초월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되어야 하기에 아름답고 따스한 옷을 입고 푸근한 메시지를 들고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삶이란 철저한 고독 속에서도 한없이 따스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전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이율배반적이기에 더욱 외로운 것인가 보다.

김대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fadela0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