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살 예보
젊음은 원래 무거운 것이다. 그래서 청춘만이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젊음의 반대가 늙음이 아니라, 조금 더 나아가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죽음은 워낙이나 숭엄한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인생의 온갖 신고를 다 겪은 노년이 최후에 접하는 것이어야 맞다.

그런데도 죽음에 스스로 찾아가는 이들,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다. 1995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자살은 사망원인 중 계속 9번째였다. 그러던 것이 2005년부터는 사망원인 분류에서 4번째로 뛰어올랐다. 자연히 명예롭지 못한 자살 통계도 한둘이 아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자살률은 8년째 1위다. 10만명당 31.7명(2011년)으로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다.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 20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라는 통계도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자살도 최근 10년새 4배가 늘어 역시 범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생명체 중 인간만이 자살하는 존재라지만 한국은 좀 심하다. 전문가연 하는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 입시 등 경쟁과열, 생명경시 풍조 등 온갖 이론을 다 댄다. 사회병리적 관점을 넘어 신세대의 DNA 변화설까지 들리지만 명료한 설명이 없다. 이것도 이유, 저것도 원인, 다 합쳐 ‘믹스이론’이라도 낼까.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서울서 제일 많이 뛰어내린다는 마포대교에 최근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생명의 다리’ 자살방지 프로그램을 설치해 나름 성과를 냈다고 들린다. 지역별 자살예방센터나 생명의전화 같은 것도 전부터 있었다.

이번에는 자살 예보시스템이 개발됐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셜미디어 업체인 다음소프트 합작이다. SNS에서 ‘힘들다’ ‘자살’과 같은 말의 빈도에다 물가, 실업률, 주가지수, 일조량, 유명인의 자살까지 종합 반영하는 모델이다.

그래서 일기예보하듯 자살위험의 정도를 예측한다. 폭풍주의보, 한파경보, 폭염특보 예보와 비슷하다. 연구팀이 자체 평가한 이 예보의 정확성은 79%라는데 SNS상의 빅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엿새째 연속해 비, 25개월째 실업률은 고공행진, 어제 주가는 연중최저…. 오늘의 자살예보 지수는 80입니다. 서울은 82, 충청권은 77…. 모두 조심하십시오. 특히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6월 고교 모의고사는 1주일, 대입 수능은 꼭 5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니 고등학생 지수는 90, 수도권 고교생은 최대 92…. 그래서 중고생 학부형들은 특별히 자녀들을 유의해 지켜보십시오.” 매일 아침, 또 주간예보로 이렇게 전국 자살위험 예보도를 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