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중산층 70%' 달성하려면
중산층 비중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공약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빈부 격차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담고 있다. ‘아랍의 봄’ ‘월가 점령’ 시위가 소득 불균형에 대한 불만 확산에서 비롯된 만큼 한국도 양극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은 기업과 가계 간 소득 증가율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심한 편이다. 산업연구원(KIET)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0년 기업 소득의 연평균 실질증가율은 16.4%인 데 비해 가계 소득은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기업 오너들을 ‘탐욕의 화신’으로 규정하고 개혁 대상으로 삼는 이유 중 하나다. 대기업에 크고 무거운 족쇄를 채울수록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작용했을 수 있다.

‘선의의 입법’도 공론화 거쳐야

그렇지 않고서야 총수 지분 30% 이상 기업의 부당내부 거래는 총수 지시로 추정한다는 ‘30% 룰’과 내부 거래 정당성 입증 책임 등을 담은 징벌적 법안을 쏟아낼 수 있었겠는가. 6월 임시국회에서는 등기임원은 아니어도 사실상 등기임원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기업 오너 등의 보수 총액을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하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명분 있는 규제라고 해도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타당성과 적정성을 집요하게 따져봐야 한다. 선의(善意)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입법 동기를 공론화해 객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99명이 찬성해도 한 명의 반대가 있으면 그 목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의회 역사가 한국보다 깊은 미국에서는 입법 과정에서의 논의가 끈질기고 치열하다. 충격적인 총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도 총기를 규제하는 법을 단숨에 만들지 못한다. 압력단체 영향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밀어붙이기식 입법을 자제하는 데 따른 현상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금융위기가 터지자 재발 방지를 위해 나온 게 ‘도드-프랭크법’이다. 규제 명분이 그렇게 확연했는데도 상·하원 상임위원회의 법안이 발의되고 조정과정을 거쳐 의결하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다. 규제를 하되 월가 금융사의 ‘혁신 마인드’는 지켜주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창의적 혁신 마인드 지켜줘야

에드먼드 펠프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2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18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몇 차례 공황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국민 소득이 증가하는 등 경제적 통합이 가능했던 건 기업의 끊임없는 혁신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의 혁신은 신(新)사업에 진출하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노(老)학자의 지적대로라면 중산층을 70%로 끌어올려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혁신에 기반한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의원들은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일거에 바로잡으면 약자들의 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믿는 듯하다. 자신을 악마로 만들어 법정에 세우려는 입법 활동이 한창인데, 어떤 기업인이 사업을 키우고 혁신하려는 노력을 하겠는가. 지나치게 커진 규제리스크 탓에 기업인들이 움츠러들지 않도록 박 대통령이 정치권을 설득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의 속도를 조절하는 게 옳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