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이상한 채권단 회의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는 자율협약을 신청한 STX그룹의 지주회사인 (주)STX 채권단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5개 채권금융회사 실무자 외에 금융감독원 직원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협조를 요청할 때면 채권단을 당국으로 불러들였던 관행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다.

금감원 직원이 지켜보는 데서 하는 대화가 편할 리 없다. 일부 참석자가 법정관리 검토 여부 등을 물어보긴 했지만, 대부분은 회의를 주재한 산업은행 측의 설명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금감원 직원은 회의 중 산업은행 측에 “(자율협약 체결에) 찬성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다음날인 7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서 열린 STX그룹 계열사 포스텍의 채권단 회의 후에도 금감원은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찬성 여부를 물었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며칠까지 찬성 여부를 밝혀라’는 당국의 요청에 난감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이처럼 ‘무리수’를 둔 것은 지주회사인 (주)STX 등에 돈을 대서 살리는 데 대한 채권단 내 반대 기류가 심상찮아서다.

(주)STX는 STX조선해양 등과 달리 실질 사업 기능이 거의 없는 지주회사라는 점이 자율협약 체결에 걸림돌이다. 채권단의 다른 관계자는 “지주회사를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으로 살려준 전례가 많지 않아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만기도래한 회사채를 막아주는 등의 지원이 끝나고 나면 추후 감사에서 특혜 시비를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 고민도 털어놨다.

금감원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우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 우리은행 등 정부 소유 은행들이 STX 채권의 상당 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른 사례와 구분된다. 또 국가적으로 중요한 조선 산업이 기로에 선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해 줄 만하다.

금융당국이 기업 정상화를 위한 자금 지원을 금융회사에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업무수행이다. 하지만 목적이 숭고해도 편법적인 방식과 내용이 모두 용인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여러 장소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이 주도하는 것이고 당국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과의 괴리를 줄이는 지혜를 찾아야 할 때다.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