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환노위·법사위의 엉터리 숫자놀음
“과징금 범위는 법령이 정한 최고 제재수준인 영업정지 6개월에 맞게 정한 것입니다.”

이춘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지난 6일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를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사위는 이날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의 과징금 범위를 매출액의 당초 10% 이하에서 5% 이하로 낮춰 의결했다. 화학물질 관리를 소홀히 한 기업들에 대한 제재수위를 다소 완화한 것이다.

하지만 “5%가 영업정지 6개월에 부합한다”는 이 간사의 설명에 재계뿐만 아니라 관련 부처 공무원들도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처음부터 무리하기 짝이 없는 10% 선을 설정해 놓은 뒤, 그걸 절반으로 줄였다고 생색을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매출액 1%’ 안을 주장했던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환노위와 법사위를 오가며 국회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5%를 정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환경부가 10%를 주장하고 산업부가 1%를 주장하고 있으니 5%로 하는 게 적당하겠다는 기계적 절충을 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국회가 이 문제를 다뤄온 경로를 보면 더 한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환노위 개정안은 과징금을 ‘매출액의 50% 이상’으로 명시했다. 삼성전자 불산 누출 등 잇따른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국민적 불안감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매출액 기준이 본사인지 해당사업장인지, 왜 50% 이상인지에 대한 이성적인 논의는 전혀 없었다. 결국 환노위 스스로도 50%는 지나치다고 여겼는지 기준을 10%로 슬그머니 낮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왜 10%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도 전혀 없었다.

법사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새누리당 소속 위원들은 ‘1% 이하’를 고수했고 민주당 소속 위원들은 ‘7~10% 이하’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여야 절충안이 마련됐지만 숫자 놀음만 하다가 끝났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존폐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중대법안이 이렇게 속전속결로 처리된 것이다. 의원들은 사업장의 안전관리 불안을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불안한 사람들은 논의 한 달여 만에 50%를 5%로 바꿔 버리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이다.

조미현 경제부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