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친절서비스로 성공한 그는 한창 투자가 필요한 중에도 고향인 경남 남해에 도서관과 군민회관을 지으라며 3억원을 보냈다. 40여년 전엔 상당히 큰돈이었다. 이후로도 한국 국적을 끝까지 지키며 고향 사람들을 돕던 그는 최근 남해군이 추진 중인 일본마을에 1번으로 입주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를 위해 고향사람들은 MK기념관을 세우겠다며 환영하고 있다.
사천이 고향인 재일동포 사업가 한창우 마루한 회장(82)도 그렇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6세 때 밀항선으로 현해탄을 건넜다. 당시 그가 가진 것은 쌀 두 되와 영어사전 한 권이 전부였다고 한다. 온갖 고생 끝에 연매출 30조원의 거대 한상(韓商)이 된 그는 2010년 사재 60억원을 털어 고향에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해마다 꿈나무들을 격려하며 고향 사랑 잔치를 벌이고 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고향은 휴전선 이북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이다. 17세에 부친의 소 판 돈 70원을 몰래 갖고 가출한 그가 83세에 소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 1945년 아버지 환갑잔치를 위해 고향집을 찾은 지 53년 만이었다. 그날 이루 말할 수 없이 설렌다며 목이 메던 그는 넉 달 후 또 501마리를 싣고 방북했다.
이들 기업인은 자신이 어려울 때 고향이야말로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익명이나 실명으로 장학금을 내놓고 사회복지시설을 기부하는 등의 ‘아름다운 환원’이 그래서 더 의미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1)이 어제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마을잔치를 열었다는 소식이다. 1971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43년째다. 신 회장은 대암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고 주민들이 흩어지자 마을 이름을 딴 ‘둔기회’를 결성한 뒤로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잔치를 이어오고 있다. 무쇠솥에 밥을 짓고 돼지를 잡던 초창기 잔치 풍경이 이제는 뷔페식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훈훈한 풍경은 변함이 없다.
수몰 전 70여가구였던 둔기회 회원은 자손들이 늘면서 어느새 850가구, 1500여명으로 늘었다니 이 또한 기업 창업만큼이나 의미있는 ‘투자’요 ‘성장’이다. 90이 넘은 그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힘도 여기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