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정임금협약이 시급하다
고용률 70% 달성, 비정규직 대폭 축소, 정년 60세 시대라는 국정 고용 아젠다가 차례로 현실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들 목표의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공통의 정책과제는 임금체계 개선이다. 개선 방향은 공정한 임금이다. 노동시장에서 다양한 고용형태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규제는 한계가 있다. 모든 일자리가 안정적인 일자리가 되도록 견인하기 위해서는 임금이 공정하고 안정적이어야 가능하다.

임금은 이른바 유연안정성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라고 할 수 있다.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해고는 자제하면서도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부담을 경감시켜주도록 연공급 임금제도 혁신을 중심으로 임금체계상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노사정의 추가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고용과 관련한 우리 사회 문제는 단순한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청년층 고급인력들의 ‘취업 사보타주’를 타파할 수 있는 공정임금의 기반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임금이 공정하면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고급인력이 노동시장에 들어오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러면 다시 고급인력이 더 몰리는 선순환이 가능해질 것이다. 임금이 공정하면 중·고령 인력도 직무가치에 준해서 임금피크제를 수용할 것이다. 반면에 연공급 제도 안에서 나이가 들었다고 갑자기 임금을 깎자고 하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난제들은 결국 임금이 공정하면 풀릴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연공급 대신 직무급 도입을 역설하고는 하지만 직무급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직무급이란 간단히 표현하면 같은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학력, 근속 연수, 연령 등 조건의 차이와 관계없이 같은 임금을 지불하는 제도를 말한다. 직무표준을 개발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 외에 노사정이 직무에 따른 임금가치를 공통적으로 설정하려는 추가적인 노력 없이 직무중심 노동시장이 형성되기는 어렵다.

직무급의 정착은 결국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임금차별 여지를 줄이는 촉매제 역할도 할 것이다. 노동계가 지지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원칙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따라서 직무급이라 하더라도 기업별로 서로 다른 협의의 직무급이 아니라 직종별로 숙련과 역량을 감안한 광의의 직무급 체계를 정부가 중심이 돼 개발하고 이를 노사가 동의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노동정책에서 임금 문제는 고용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위치로 전락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고용형태가 출현하는 것을 규제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고용형태의 다양화라는 시대적 추세를 반영하면서도 안정적인 고용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고용모델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전에 공정한 임금모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임금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현재까지의 정책적 논의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노사정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1997년 이전 완전고용 시기에는 임금안정화를 통한 수출경쟁력 유지, 1997년 이후 만성적인 일자리 위기국면에서는 임금안정과 고용안정 간의 교환,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격차해소 방안 등이 제시돼 왔다.

이런 임금정책 기조는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병행존재하면서 필요에 따라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이 낮은 근로자는 고용조건도 열악하기에 단순한 임금안정과 고용안정 간의 교환논리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풀 수 없다. 격차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협약이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의 인상이라는 정책목표 또한 직무중심 임금제도 형성을 통한 중소기업 노동시장 발전과 병행되지 않고서는 풀기 어려운 과제다. 임금중심의 사회협약 마련은 결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다. 고용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정책이다.

이장원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