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덴털 회장 나가"…입김 더 세진 주주들
미국에서 주주들의 화를 돋운 기업 경영진들이 잇따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주주들이 주주총회 표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는 일이 잦아지면서다. 그런데다 지배구조 개선, 경영진 교체 등을 통해 주가를 띄우는 이른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주주들의 입김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미국 4위 석유회사인 옥시덴털페트롤리움 주주들은 4일(현지시간) 열린 주주총회에서 레이 이라니 회장(사진)을 쫓아냈다. 76%의 주주들이 이라니 회장의 재임용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것.

1983년 옥시덴털에 입사한 이라니 회장은 1990년부터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을 맡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에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2년 전 주주총회에서 CEO직을 박탈한 데 이어 이번에는 스티브 체이즌 현 CEO를 축출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회장직까지 뺏었다.

퍼스트퍼시픽어드바이저 등 기관투자가들은 지난 2월 회사가 체이즌 CEO 교체 방침을 밝히자 반대 의견을 보이며 주주들에게 이라니 회장 재임안에 반대표를 던지라고 설득해 왔다. 퍼스트퍼시픽의 스티븐 로믹 매니징디렉터는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 정의가 승리하는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이라니 회장 축출은 미국에서 주주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세지는 추세를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 하나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평가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휴렛팩커드(HP)의 레이 레인 이사회 의장도 지난 3월20일 주주총회에서 40%가 넘는 주주들이 그의 재임에 반대표를 던진 후 지난달 스스로 사임했다.

애플은 사내에 쌓아놓은 막대한 현금을 주주들에게 환원하라는 압력에 못 이겨 최근 170억달러의 채권을 발행해야 했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사용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유명 행동주의 헤지펀드 매니저인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캐피털 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JP모건 경영진도 오는 21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주주들의 요구로 제이미 다이먼 CEO가 겸임하고 있는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지난해 JP모건 런던지점 트레이더인 브루노 익실이 낸 60억달러 규모의 파생상품 투자손실을 막지 못한 것이 다이먼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쏠려 있는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본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