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와타나베·소피아 부인' 한국서 랑데부한다면…
최근 들어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제조업 경기가 다시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를 추진했음에도 좀처럼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6년 전 미국은 금융 위기 속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빅 스텝 금리 인하(기준금리를 한꺼번에 서너 단계씩 내리는 것)’와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듯 중앙은행이 통화를 대규모로 푸는 정책을 추진했다. 올 들어 양적완화 조기 종료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지난주 열렸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는 경기부양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와타나베·소피아 부인' 한국서 랑데부한다면…
유럽과 일본도 경기부양 의사를 다시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회원국별로 논란이 일던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하는 등 약화 조짐을 보였던 성장 우선 정책을 재천명했다. 일본도 인플레이션 목표치 2% 조기 달성을 재확인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선진국도 조만간 양적완화에 동참할 태세다.

선진국의 통화 완화와 이에 따른 통화 약세로 캐리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될 여건이 재성숙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란 투자자가 차입한 자금으로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유가증권의 수익률이 차입금리보다 높으면 ‘포지티브 캐리’, 반대의 경우를 ‘네거티브 캐리’라고 한다. 또 차입통화에 따라 엔캐리와 달러캐리, 유로캐리 자금 등으로 구별된다.

캐리 트레이드의 이론적 근거는 통화가치를 감안한 국제 간 ‘자금이동설(m=rd-(re+e), m:자금유입액, rd:투자 대상국 수익률, re:차입국 금리, e:환율 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투자 대상국의 수익률이 통화가치를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을 경우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일으켜 투자 대상국의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투자 대상국과 자금 차입국 간의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캐리자금은 엔캐리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와타나베 부인이 주도해 왔다. 당시 일본은 장기간 경기침체와 선진국 간 달러 가치 부양을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 이후 ‘제로’ 수준에 가까운 금리와 엔화 약세를 배경으로 엔캐리 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비슷한 여건이 재조성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달러캐리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스미스 부인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를 계기로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미국계 자금의 차입금리가 낮은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 이후 달러캐리 트레이드가 엔캐리 트레이드를 웃돌 만큼 급증했다.

작년에 등장하기 시작한 소피아 부인도 최근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주 유럽 금리를 내리고 드라기식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유로캐리 트레이드 여건도 무르익고 있다. 특히 앞으로 한국 등 신흥국에서는 와타나베 부인과 소피아 부인이 ‘랑데부(rendezvous·만남)’할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의 자본 흐름에 관한 연구를 종합해 보면 요즘처럼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에 나서는 상황에서는 자본유출입 변동성이 증가하고, 경기순응성이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금리 차와 환차익을 겨냥한 핫머니성 캐리자금이 활발해지면서 경기순응성이 뚜렷해지는 점이 눈에 띈다.

경기순응성은 국제 자본 흐름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선진국 자본의 유출입이 신흥국의 경기변동을 증폭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급격한 자본 유입은 신흥국의 통화 팽창, 자산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다가 자본 유출로 돌변할 경우에는 주가 급락, 환율 급등 등을 야기해 거시경제의 변동성을 증폭시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종전의 핫머니 자금에 대한 규제 방안과 별도로 경기순응성 완화를 위한 금융규제 방안이 논의됐다.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결제은행(BIS)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글로벌 금융회사에 대해 △자본금 규제 △대손충당금 적립 △레버리지 및 시가평가 규제 등을 의무화했다. 최근에는 신흥국 간에 이런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요즘처럼 각국이 다시 정책자금을 풀고 캐리자금이 유입될 여건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경기순응성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외화유동성을 어느 정도 확보해 놓은 만큼 관련 국제 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캐리자금 등이 유입될 수 있는 유인을 사전에 줄여놓아야 한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토빈세 부과 문제뿐 아니라 선진국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 유입의 대처 방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PSI는 국부펀드 등을 통해 유입 외자에 상응하는 해외 자산을 사들여 통화 가치의 균형을 맞추는 방안을 말한다. 전제는 신용 위험 면에서 외자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국내 자본의 해외 투자에 따른 금융공동화와 국부 유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