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지도부 한계 속 계파 갈등 극복 못해
재ㆍ보선 참패…안보문제 '초당적 협력' 성과


18대 대선 패배 후 민주통합당의 과도기적 리더십으로 등장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5·4 전당대회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감한다.

문 비대위원장은 2일 낮 비대위원들과 오찬회동을 갖고 지난 4개월 동안의 활동을 격려한다.

지난 1월 9일 대선 패배의 후유증 속에 출범한 문희상 체제는 당을 수습하고 재기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주춧돌을 놓는데 역점을 둬왔다.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대선 패배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분석작업이었다.

문 비대위원장은 취임 당시 "대선평가위를 조속히 가동해 민주당의 잘못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찾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대선평가위가 두 달여 간의 작업 끝에 내놓은 대선평가보고서는 오히려 그 취지와 의도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외부인사들까지 참여해 작성된 보고서는 대선패배의 책임론을 둘러싼 공정성과 객관성 공방에 휘말렸다.

그 결과 냉철한 성찰을 통해 수권정당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각오는 퇴색하고 말았다.

특히 친노(친노무현)·주류 진영이 강력 반발하면서 뿌리깊은 당내 계파간 갈등의 골만 확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문희상체제의 또다른 활동축이었던 정치혁신위원회와 전당대회준비위원회도 나름대로 정치혁신안을 내놓고, 당헌ㆍ당규를 개정하며 재도약을 위해 부심했지만 기대 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도주의 노선을 보강하고 각종 개혁안을 제시하며 외연을 넓히려고 노력했지만 계파간 갈등에 파묻히고 말았다.

당초 계획보다 전대 일정도 뒤로 밀리면서 개혁의 동력은 점차 상실돼 갔고, 당권을 둘러싼 계파 간 다툼만 더욱 첨예해졌다.

계파갈등의 뿌리를 뽑겠다는 비대위의 약속은 사실상 공염불이 됐다.

여당의 독주를 막는 건전한 견제세력으로서의 역할도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문희상체제는 대선 이후 국회에 제출된 32건의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병관 전 국방부장관 후보자 등 3명을 낙마시켰다.

이를 통해 박근혜정부의 인사난맥상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부조직법 개편을 둘러싼 협상에선 새 정부 출범에 '발목잡기'를 한다는 역풍에 직면하기도 했다.

다만 문희상체제는 과거와 달리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야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히 탈색시켰다는 평가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잇따른 도발 위협, 개성공단 폐쇄 위기 국면을 접하면서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4월 중순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에 응해 두 차례나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청와대에서 만찬회동을 하며 할 말은 하고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유연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입법과정에서도 여당에 끌려가지 않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입법을 관철시킴으로써 '대안 정당'의 면모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성과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희상체제의 성적표는 4ㆍ24 재ㆍ보선 결과가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은 재·보선을 재정비의 기회로 삼지만, 4·24 재·보선은 지리멸렬한 민주당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3개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해 12곳에서 치러진 재ㆍ보선에서 민주당은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채 참패했다.

'불임정당', '들러리정당'이라는 위기감이 당내에 팽배해졌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당선됨으로써 민주당은 다시 '안풍'(安風·안철수바람)의 영향권에 접어들면서 야권의 주도권을 놓고 '127대 1'로 싸우는 형국이 됐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중차대한 선거를 앞두고 전권을 가진 여느 비대위와 달리 '문희상 체제'는 처음부터 위상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정권 초기 '촛불정국'을 초래한 이명박정부보다 박근혜정부는 유화적인 측면을 보여 외부 동력을 찾기도 어려웠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