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잔 마신 위스키…축배 든 보드카
“오늘 2차는 바(bar)로 가시죠.”

대기업 마케팅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김세종 과장(35)은 최근 다른 업체와 술자리를 가질 때 2차로 바를 자주 찾는다. 경기부진 여파로 고급 술집을 가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면서 대신 바에서 보드카 마시는 것을 즐기게 됐다. 그는 “방 하나 잡고 보드카 2~3병을 마시면 비슷한 규모의 단란주점에 갔을 때보다 비용이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며 “다음날 업무에도 지장이 덜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경기 부진으로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위스키 시장을 보드카가 채우고 있다. 위스키를 마실 때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데다 칵테일 등으로 희석해 마시면 훨씬 부드러워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위스키 대신 보드카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위스키 출고량은 45만309박스(500㎖×18병)로, 지난해 같은 기간(50만6449박스)보다 11% 감소했다. 위스키 출고량은 2008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서 2009년에는 전년 동기보다 10.1%, 2010년 1.4%, 2011년 4.8% 각각 줄어들었다.

주류업계에서는 위스키가 사라진 시장을 보드카가 채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간 보드카 출고량은 16만1610박스(500㎖×18병)로 전년 동기(9만3082박스)보다 76.3% 늘었다. 절대적인 판매규모는 아직 위스키에 미치지 못하지만, 증가속도가 매우 빨라 향후 수년 내에 대체재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드카는 알코올 도수 40도로 위스키와 비슷하지만 가격은 저렴하다. 이마트에서 100㎖ 기준으로 보드카 ‘앱솔루트’는 4106원이며 위스키 판매 1위 제품인 윈저12년은 6544원이다. 향이 적어 칵테일 등으로 마시기 좋기 때문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30대를 중심으로 클럽 문화가 확산된 것도 보드카 인기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강남의 대형 클럽에서는 위스키 대신 보드카를 판매하면서 20대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보드카 비중 높이는 양주업계

위스키 업계 1, 2위인 디아지오코리아와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위스키에 편중돼 있던 주류 포트폴리오를 보드카, 맥주 등으로 다각화해 최근의 위기를 타개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보드카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앱솔루트로 시장점유율 40% 이상을 점유해 국내 보드카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페르노리카는 2012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1년간 앱솔루트 6만7751상자를 출고했다.

이는 경쟁사인 디아지오코리아의 대표적 위스키 브랜드인 ‘조니워커’의 출고량(6만1768상자)을 뛰어넘은 것이다. 페르노리카는 젊은 층이 주로 찾는 클럽, 바 등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해 앱솔루트를 위스키에 맞먹는 대표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키울 계획이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세계 1위 브랜드인 ‘스미노프’를 내세워 보드카 시장에서 페르노리카를 추격한다는 전략이다. 김종우 디아지오코리아 대표는 “보드카와 맥주 등 비위스키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위스키는 고급화 전략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카치블루’로 위스키업계 3위를 달리고 있는 롯데주류는 이 시장이 뜨거워지자 최근 보드카 신제품 ‘스베드카’를 지난 24일 출시하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