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K씨 등 유명 연예인들의 연이은 결혼식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웨딩홀 근처에서 ‘축가’ 대신 ‘장송곡’이 울려 퍼지고 있어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고급 호텔은 아니지만 ‘7성급’을 표방하는 전문웨딩홀 서울 대치동 C예식장은 매주말을 앞두고 집회시위 신고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채권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장송곡을 틀어놓고 벌여온 시위를 막기 위해서다.

시위를 벌이는 측은 ‘가짜 채권자들 놀음에 진성 채권자들 눈에는 피눈물이 흐른다’ ‘OOO은 진성 채권단의 것이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나 팻말을 앞세워 하객들이 몰려드는 시간대에 맞춰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구호를 외쳐댔다. 이들은 수서경찰서에 정식으로 등록신청을 마치고 시위를 벌였다.

남의 잔치에 작정하고 찬물을 끼얹는 이들 시위자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경찰에 따르면 시위자들은 이 웨딩홀의 이전 주인인 J모씨(구치소 수감 중)에게 돈을 빌려줬거나 투자한 채권자들의 대리인들이다. 땅을 빌려 웨딩홀을 차린 J씨는 사업이 여의치 않아 돈을 제때 갚지 못해 구치소에 수감됐고, 이후 예식장은 경매에 넘어갔다. 이때 땅 주인인 A모씨가 경매에 참가해 땅을 낙찰받았고 J씨의 채권자 일부가 A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영을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A씨의 제안을 거부한 채권자들이 자신이 투자하거나 빌린 돈을 돌려달라며 예식장 앞에서 ‘무력 시위’를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시위 참가자는 “우리가 실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결혼식 분위기를 깨뜨리는 노래가 이어지자 예식장 측은 건물 주변에서 이들의 시위를 금지하고 꽹과리 등 악기를 치거나 장송곡을 틀어 소음을 발생시키지 못하도록 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웨딩홀의 요구를 대부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1부(부장판사 김재호)는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시위를 할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시위에 사용한 문구들도 당장 사용을 막아야 할 정도라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29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소음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예식을 진행하기 어려워지는지 구체적이지 않다”며 일부 기각했다.

다만 예식장 건물 근처에서 장송곡을 틀지 않도록 해달라는 신청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예식장의 혼주나 고객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 등을 감안할 때 소음의 수준과 상관없이 상당히 심각한 명예나 신용 훼손, 업무방해를 초래할 것이 명백하다”고 판결했다.

한편 대법원은 2011년 예식장 앞에서 검은 리본을 매고 장송곡을 트는 등의 시위를 한 시위자는 예식장업주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지훈/정소람 기자 liz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