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래창조, 교육개혁에 달렸다
현 정부가 출범할 즈음 발생한, 신설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 영입을 둘러싼 해프닝은 ‘미래창조’나 ‘창조경제’의 핵심인 교육과 관련해 성찰적 반성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창조경제와 관련해 성공한 ‘검은머리 외국인’을 영입하고자 했던 것은 그동안의 ‘따라잡기’ 교육방식의 적용이었고, 갖은 구설로 그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겉핥기식 교육과 단선적 경쟁교육에 근본원인이 있다. 기존의 성공사례는 복사할 수 없거니와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지만, 무언가 배워보려고 하기보다 단세포적 논리로 배척한 것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의 오만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찰은 제쳐두고 그 수준 그대로의 개념논쟁과 정치적 공방으로 지새우고 있는 현실은 미래창조는커녕 창조경제로 가는 발걸음마저 묶어두고 말 형국이다. 개념을 두고 ‘원초적’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사안은 분명해진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선진국 따라잡기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지만 선진국과 후발개발도상국 사이에 끼여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이제 따라잡기 단계를 뛰어넘어 기업과 산업은 물론 경제운용 방식을 혁신해 앞서 나가자는 것이다. 미래는 수학적 시간의 경과에 따라 오기 마련이지만 누구나 무엇을 따라잡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자는 역사적 시간의 관점에서 미래창조를 이해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조’는 기성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방법론도 기성품을 적당히 조립하는 수준에서 찾아질 수 없고 새로이 창조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인데, 이는 결국 교육에서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기존의 따라잡기식 교육이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었다 치더라도 계속 이에 의존하는 것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이와 더불어 겉핥기식 교육, 주입식 교육, 간판 교육, 이념 교육, 단선적 경쟁교육 등도 혁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존 교육 제도 및 내용과 방식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만 창조경제와 미래창조의 길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개혁을 미래창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학교의 ‘과잉교육’을 조정하고 직업능력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평생학습을 확충하는 것이 주된 개혁의 방향이다. 반값 등록금은 ‘현실정치’일진 몰라도 미래창조와는 역행하는 무책임한 정책이다. 오히려 대학과 대학생 수를 과감히 줄이고, 모노레일식 학제를 다선적인 체제로 바꾸는 창조적 파괴가 미래창조적이다. 이는 사회적 보상체계의 개편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창조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광의의 노동현장에서 나온다. 현재의 6-3-3-4 학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육체적지적 발육의 조숙화에 따라 5-5-4(3) 학제로 개편, 노동현장에의 진입을 앞당기는 개혁도 필요하다.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고교 의무교육은 이렇게 학제를 개편한 후에 시행하면 재정부담도 경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제도개혁은 사고의 외연을 넓히고 내포를 심화시키는 교육의 내용 및 방식과 맞물려 이루어져야 한다. 겉핥기로 흐르기 쉬운 주입식을 지양하고 원리를 터득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교과 내용이 개편될 필요가 있다. 주입식 이념교육은 타기돼야 하며 이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으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균형감각을 기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기 나름인 학사관리를 진보와 보수로 편 가르는 교육행정의 작태도 창조적으로 파괴돼야 함은 물론이다.

미래창조를 교육개혁으로부터 시작하자고 하면 특히 정치권은 어느 세월에 창조하자는 얘기냐며 다그치기부터 할 공산이 크다. 다른 일손은 놓고 교육개혁만 하자는 얘기가 아닌 것쯤은 누구라도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교육개혁을 위해 필요한 창조적 파괴가 거의 모든 영역에 널려 있는 현실에서 교육개혁은 교육개혁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따라잡기 경로의존성을 탈피하는 촉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개혁 없는 미래는 그저 시간적 미래일 뿐이다.

김대환 < 인하대 교수·경제학 Dae-Hwan.Kim@inha.ac.kr >